나의 여행기

[속초-서울 도보여행기] 미시령 옛길을 넘다.

혜안1952 2012. 6. 24. 20:20

 

3.첫째 날(6/11)-미시령 옛길을 넘다.

 

  나 자신과의 선한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침 6시 배낭을 메고 밖을 나오니 강원도라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하다. 우리는 호국의 달을 맞아 커다란 태극기를 배낭에 매달았다. 또한 태극기는 자동차 길에서 운전자에게 조심해 달라는 의미도 있었다.

  출발지인 시청광장은 이른 시간이라 수위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출발 인증 샷을 하고 파이팅을 외치고 나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청에서 영랑호로 가서 산책로를 따라 어제 속초 토박이가 가르쳐 준대로 가는데 길 안내판이 없어 방향을 잡기 어렵다. 마침 아침 산책객들에게 여러 번 물으서 장천마을로 갔다. 장천마을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아주 큰 마을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60여 가구가 살며 에너지 절약 시범마을이어서 태양열주택이 많았다. 길이서 오디나무를 발견하고 오디를 먹으니 갈증도 해소되고 배고픔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치 아프리카 사자들이 식사 후 빨간 피를 묻히고 있는 것처럼 오디로 입술주변이 파랗게 물들었다. 한 참을 올라오니 한화콘도가 보이고 골프장에서는 골퍼들이 열심히 굿샷을 날리고 있었다. 골프장을 가로질러 한화콘도와 대조영 세트장을 지나니 학사평 두부마을이 나왔다. 옛날 이곳에는 콩 재배를 많이 하여 두부음식이 발달하여 오늘날 두부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김영애할머니 두부집>에서 출발 2시간 만에 아침을 먹었다.

  다시 날씨가 개어 반바지로 갈아 입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미시령옛길을 향해 출발한다. 미시령 옛길은 거의 차가 안 다닐 정도로 한적하여 걷기에는 좋았지만 역시 시멘트포장도로에다가 오르막 경사가 심하여 힘이 들었다. 마주보는 울산바위는 거의 정상에 오를 때까지 모양을 달리하며 나의 앞뒤를 따라 보였다. 바위규모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그 생긴 형상도 신비스러울 정도다. 두 시간이 넘게 걸어 겨우 정상에 도착하니 옛 휴게소는 완전 폐쇄되고 간식하나 사 먹을 수 없다. 우리는 짐을 최소화 하느라 물과 사탕밖에 없다. 휴게소는 국군 유해 발굴 감식단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미시령 정상에서 군인들의 도움으로 인증샷을 하고 출발하는데 젊은 해병대원들도 하루에 30km이상을 걷지 않는다며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좀 힘이 덜 들지만 지루한 길이 계속되고 재를 다 넘어니 점심때가 되었는데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미시령터널이 끝날 때 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딱 한집 “봉평메밀막국수” 라는 상호가 보였다.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 장사를 하는지 문을 두드리니 수심이 가득한 아주머니가 영업을 한다고 한다.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주머니 혼자계셨다.산채비빔밥 한그릇에 좀 비싼 듯한 만원을 주고  허기를 채웠다. 나중에 사장님이 나타나 자기네 산채비빔밥은 그곳의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이라 다른 곳과 맛이 다르다며 자랑을 한다. 마침 손님이 한 사람도 없어 바닥에 누워 오수를 즐겼다.

   식당을 나와서 다시 출발. 오는 길에 후식으로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으며 국도를 따라 걷는데 예쁜 2층집 앞에서 어떤 거사가 손짓을 한다. 하얗게 쉰 머리를 여자처럼 뒤로 질끈 묶고 있어 마치 도사처럼 보였다. 아직 쉴 시간은 아니지만 좀 위압적인 목소리로 “쉬었다 가! 커피도 한잔하고, 들어와!” 라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 안은 어수선하고 여기저기 산나물과 기구들이 어지럽게 늘려져 있다.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묻기에 우리가 환갑기념 도보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 고개를 돌리며 그럼 형님들이구만! 하면서 자기는 55세로 돌싱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를 한참 어린사람으로 본 모양이다. 끊인 물에 인스턴트커피를 한잔 타주더니 도사는 곡기로 막걸리를 들이킨다. 사람이 귀하여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연인즉 옛날 미시령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산에서 온갖 약초를 캐다가 팔기도 하며 장사를 꽤 잘 했는데 지금은 사람구경조차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보상이야 충분히 받았지만 지금처럼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침 KBS한국의 재발견 제작팀이 아주 오래전 장이 서던 동네를 도사의 안내를 받으며 촬영하러 왔다. 거사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오는데 안 부장의 두고 온 모자를 덜고 뛰어왔다. 멀리까지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데 거사가 한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쾌면, 쾌식, 쾌변이야!”

   어느 듯 백담사 입구에 오니 강에 물이 제법 있어 잠시 다리를 식히고 가기로 했다. 가게에서 참외와 방울토마토, 막걸리를 사서 발을 물에 담그고 한잔 먹으니 김삿갓이 부럽지 않다. 만해마을 가까이 와서 민박을 구하는데 첫날부터 쉽지 않다. 민박은 많이 있지만 아직 때가 아니어서 영업을 하지 않는다. 겨우 용대리 구만동에서 허름한 집을 구하여 방청소까지 하며 빨래를 하였다. 그 집 며느리 역시 동남아계 외국인이었다. 식당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송어회로 호사를 누렸다. 높은 재를 넘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발바닥은 첫날부터 30km이상을 걸어서 너무 무리하였는지 물집이 생겨서 따고 약 바르느라 정신이 없다. 하루 종일 배낭을 멘 양어깨에도 상처가 생겼다. 잠은 천국이다.

 

 

아침 6시 25분 속초시청에서 출발 인증샷!!!

 장천마을 길을 걸으며 

허수아비도 패션입니다.

장천리 농로에서 오디를 따 먹으면서

한화콘도가 어렴풋이 보이고

 

접시꽃의 아름다움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미시령을 오르기 전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다.

미시령 옛길을 오르며

 

옛길 중턱에 오니 걸어 온 길이 아득합니다.

 정상 휴게소 건물이 아련히 보입니다. 

뒤에 보이는 울산바위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저 아래 우리가 올라 온 미시령 옛길이 아득하게 보인다.

휴게소는 완전 폐쇄되었고 포장마차 하나 없네요. 그 자리엔 국군 유해발굴단이 있답니다.

 

미시령 정상

미시령을 넘어 백담사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우사장,안부장

우리를 불러 세운 거사와 벌써 정이 들고

 물에 발을 담그니 얼마나 시원했던지...

 나팔꽃(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첫날 밤을 보낸 길가의 남천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