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속초-서울 도보여행기] 옛날식 다방과 이발소가 정겹네요.

혜안1952 2012. 6. 24. 09:57

 

6.넷째 날(6.14)-옛날식 다방과 이발소도 있네.

 

   6시40분 내촌강을 따라 걷는다. 촌로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동네의 옛 지명이 아우라지라고 한다. 인근 군부대에서는 군가가 흘러나오고 주변에는 삼밭이 많이 있다. 삼은 돈 많은 사람이 장기간(최소한 6년) 토지를 임차하여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면 망하기도 한단다. 또 주변에는 내촌강을 따라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농촌은 이제 초가집은 한 집도 볼 수 없다. 마치 유럽의 아름다운 마을처럼 변해가고 있다. 가끔 보이는 헌집은 서울 사람들이 투기목적이나 나중에 내려와서 살 목적으로 사서 손도 안보고 세도 놓지 않아 흉물로 변한다고 원망을 한다. 밤나무 꽃향기가 짙은 마을에 오니 길가에 오디가 빽빽이 달렸다. 후식으로 배를 채우고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우사가 여럿 보였다. 요즘 소 한 마리에 700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소고기는 18,000/kg이고 사료 값은 13,000/kg이니 겨우 인건비정도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태어 난지 3개월쯤 된 송아지가 여러 마리 있다. 날씨가 추워 감기로 노란 똥을 싸고 있다. 그 아래 보신탕집에는 철창 속에 갖힌 개들이 울부짖고 있어 마음이 찡했다.

  9시에 화천면에 도착하여 식당을 찾으니 아침을 하는 곳은 우물정식당 한 곳 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 일하는 아주머니가 출근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좀 기다린 연후에 겨우 선지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우리 때문에 서둘러 와서 좀 심기가 불편한 듯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는 고생한다는 말보다는 먹고 살만하니 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하여 좀 서운하기는 하였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주력이 좋은 안 부장은 자꾸만 멀어져가고 우 사장과 나는 겨우 절뚝거리며 가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니 옛날식 다방도 있고 이발소도 있어 흥미롭게 보고 있다.요즘 세계적인 불황속에 미국 뉴욕에도 옛날식 이발소가 유행한다고 한다. 힌 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능숙한 솜씨로 가위질을 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외과의사가 이발사를 겸하여 힌 가운을 입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예전의 시골에서 보았던 이발소의 상징인 삼색기둥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흰 거품을 내 삭삭 면도를 해주던 이발소의 풍경이 그립기만하다. 이발소 구경에 혼이 빠져 버스 정류소에 선글라스를 두고 와서 200m이상을 절뚝거리며 다시 달려가서 가져오는 해프닝이 있었다.

  12시30분 드디어 홍천에 도착했다. 홍천은 시내로 가는 길과 외곽으로 가는 길이 있어 우리는 외곽 길을 택해 가는데 다행히 보도에는 우레탄이 깔려 있었다. 안 부장이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하여 식당을 잡고 연락이 왔다. 우 사장은 가래토시 통증으로 나보다도 30분이 늦은 1시경에 식당에 도착했다. <가락촌>이라는 고기전문 식당은 옛날에는 홍천유지들이 들락거렸다는데 지금은 길이 새로 나서 변방으로 밀려 한가하였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어 수심 가득한 여사장님이 어찌나 정성으로 고기를 꾸어 주는지 모처럼 삼겹살로 영양보충을 하고 조용한 방에서 오수를 즐겼다.

  2시35분 양덕원을 향해 출발. 아파트 주변 아름다운 꽃밭을 지나니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홍천 시내를 벗어날 쯤 편의점에 들러서 대일밴드를 또 2통 더 샀다. 여기서부터 다시 4차선 국도를 걸어야 했다. 국도를 걷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도로 표시가 여기저기 어지러울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국토부와 지자체가 제각기 만들어 서로 거리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목이 말라도 음료수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가게가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큰 식당에 가서 사이다 2병을 사서 우 사장과 한 병씩 마시며 갈증을 해소 하였다. 하오안리 휴게소까지는 겨우 아픈 다리를 끌고 갔는데 더 이상은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우 사장은 더 뒤처진다. 나도 힘들지만 우 사장의 상태가 너무 심하다. 이런 걸음으로는 먼저 간 안 부장과 도저히 보조를 맞출 수가 없다. 우리는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유일하게 식당이 하나 있어 차주들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한 쌍의 젊은이 가 들어 간지 한 20분이 지나 나와서 합승을 부탁했더니 반대방향으로 간다며 횅하니 가버린다.  아! 그 실망감. 어쩔 수 없이 뒤 2차선 국도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걸음 떼기도 힘들 정도이다.

  다행히 30분마다 다니는 버스가 왔다. 버스는 승객이 서 너 명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골버스가 승차율이 10%도 안 되고 텅 빈 채로 운행한다. 아마 언젠가 미국처럼 시골버스들은 없어질지 모르겠다. 또 거리에서 눈에 뛰는 것은 모텔과 노인요양원뿐이다. 오늘의 세태를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 참을 가다보니 안 부장이 씩씩하게 걷고 있어 미안한 마음에 버스기사님에게 부탁을 하여 같이 태우고 양덕원까지 갔다. 걸어서는 도저히 어둡기 전에 도착이 불가능 하였다. 양덕원 가기 전에는 모텔도 없다고 한다. 양덕원도 늦으면 숙소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양덕원에서 TV도 잘 안 나오는 허름한 모텔을 잡고 마침 장날이라 참외를 사서 비타민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밀린 빨래도 하였다. 이제 이 번 여행도 반 고개를 넘은 것 같다.

 

 

상쾌한 시골아침,내촌강 다리를 건너다.

 

집앞에 심어놓은 아름다운 꽃,채송화꽃이 피려고 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밤꽃

이게 삼밭입니다.

이곳 밤나무 언덕에서 오디를 따먹었지요.

廢家-"하면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던 삼돌이는 어디를 갔을까요.

 

 태어난지 3개월된 송아지,추위에 노란 물똥을 싸서 주인아저씨의 애를 태우고 있다.

소들이 주인 아저씨를 닮아 인물이 참 좋네요.그리고 얼굴이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한적한 시골에 사람구경하기가 힘들어 소들도 우리가 지나가니 일제히 고개를 돌립니다.

 

동네 이름이 특이합니다. 주음치리

아름다운 나리꽃이 여기저기 피었어요.

왼쪽 굴을 빠져나가면 다시 4차선 국도를 타야합니다.

 

 

 

 

겨울철 난방을 위한 땔감도 미리 준비하고

뻔뻔한 개들은 아침부터 사랑을 나누네요.

 

이런 그림같은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요.

 

국도변 내린천의 강태공들

 

죽은 나무도 아름답습니다. 저도 비록 죽더라도 아름답게 살다 갔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식 다방도 있고

순해보이는 순돌이도 있고

유일한 네온사인 삼색등 이발소가 정겹다.

들에서 아주머니들의 일하는 모습이 우리 어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농약도 쳐 주어야지요.

홍천 아파트와 4차선국도 사이의 꽃길이 정겹습니다.

홍천의 젖줄인 화양강.강건너가 홍천시내 입니다.

 

드디어 서울이 100km이내로 들어왔다. 반은 넘었다는 거겠지요.

 

시골 버스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