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속초-서울 도보여행기] 인제가 그렇게 좋은지 인제 알았네

혜안1952 2012. 6. 24. 19:24

 

4.둘째 날(6/12)-인제가 그렇게 좋은지 인제 알았네.

 

  6시20분 민박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흐리고 쌀쌀하여 바람막이를 걸쳤다. 5mm정도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그래도 아침공기가 너무나 상쾌하다. 만해 마을을 지나니 아름다리 소나무가 도열하여 있고 십이선녀탕입구에는 군인들이 아침구보를 하고 있다.

  구 도로는 사람도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관광객마저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식당이 문을 연곳이 없다. 일단은 식당이 나올때까지 계속 걸을 수 밖에 없다.강을 따라서 걷기에 편한 한적한 시골 농로를 따라 걷다보니 사람구경하기가 더욱 힘들다.  길가에는 들꽃이 아름답게 피어 밟기조차 미안할 정도다. 들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처음 본다. 농로가 끝날때 쯤 겨우 밭일을 하러 온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한계리까지 가야 식당이 있다고 한다. 큰일이다 한계리 까지는 아직도 7~8km도 더 남은 것 같다. <長壽亭>이라는 정자에서 잠시 쉬며 벚나무의 버찌를 따먹으며 우선 허기를 채워본다.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차를 타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좀 더 걸어가 보기로 했다. 배는 고프지만 유유히 흐르는 물소리, 부드러운 바람의 속삼임, 이름 모르는 새들의 노랫소리, 아침의 상쾌함이 너무 좋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새가 날지 않고 나비가 날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강가를 따라 걷자니 물이 맑아 백로인지 왜가리같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부지런한 강태공들은 큰 바위위에서 벌써부터 고기를 낚고 있었다.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들이 이 인적도 드문 심심산골에 낚시꾼들이 오기를 생각이나 했을까?

  한참을 가다보니 강가의 흐름한 집에서 사람이 보였다. 얼른 뛰어가 보니 아주머니가 음식을 하고 있어 아침이 가능한지 여쭈어 보니 된장국밖에 안된단다.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어서 본격적인 장사를 하지 않는데 마침 단골 낚시꾼들이 어제 서울에서 와서 같이 자고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어 그 분들 식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사연을 듣고는 배고프겠다면 구수한 된장국에다가 직접 캐왔다는 산나물에다가 본인들이 드시는 불고기까지 듬뿍 주었다.

  식후에 나무 의자에 걸쳐서 쉬고 있는데 약초며, 차가버섯, 꿀 등도 직접 채취를 하였다며 장사 속을 내비치기도 했다. 후에 들으니 그 건물도 주인은 서울사람인데 일 년에 서 너 달 장사하고 4백만 원 세를 준다고 한다. 식사 후에는 가게옆에 뽕나무에서 디저트로 오디를 따 먹고 아주머니가 주신 담근 머루주까지 한잔씩 먹었다. 소주 한병, 된장국 3그릇에 21,000원. 돈이 문제가 아니라 꿀맛이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 집은 나중에 다시 꼭 오라며 명함을 주는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8리 2반 일명 쌍다리 쉼터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걷기 시작하는데 발바닥 통증으로 정상적인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쉬었다 일어나면 당분간은 통증이 더 심하다. 그래도 공기가 맑고 날씨가 좋은 탓인지 나비들이 한가롭게 날개 짓을 하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이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할 일이 있고 가족들이 동의만 한다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미시령 길과 한계령길이 만나는 한계리에 오니 지대가 높아 경치가 참 좋았다. 옛날에는 차만 타고 다녀 몰랐는데 예술인의 마을도 있고 강을 낀 전원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살고 싶은 충동을 자아낸다. 다만 강원도는 어디가나 군부대가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시간 정도 4차선 아스팔트 길을 걸으니 원통교가 나왔다. 그 곳부터 지나 인제까지는 다행히 자전거 도로 겸 보도에 우레탄이 깔려있어 걷는데 많이 편했다.

  내린천 래프팅장과 번지점퍼장을 지나 인제시내에 진입하니 1시50분. 하늘 내린 인제는 자랑거리가 많았다. 모험레포츠의 천국, 전국 최장수 고장 등등

  인제터미널에서 택시기사에게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아무집이나 다 맛있고 책에 소개 된 집은 전부 돈 주고 광고 낸 것이라고 한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맛국수집을 찾았다. 우리는 음식도 맛있어야 하지만 식후 약간의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보통 식사 때 반주로 막걸리 한잔씩 걸친 후 30분-1시간 정도 쉬었다 가곤 한다. 인제에서는 인제옥수수막걸리와 인제막걸리를 먹었는데 옥수수막걸리는 여자들이 먹기에 좋도록 달짝지근했다. 식당에는 성우 양지훈씨가 와서 “인제 막걸리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인제 알았네. 라고 쓴 글이 보였다. 그러나 속초에서 먹은 한계령 막걸리 맛을 따라갈 수는 없다. 우 사장은 가래토시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도 발바닥의 물집뿐만 아니라 발가락에도 여러 곳에 물집이 생겨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3시40분 다시 인제를 출발하려는데 날씨가 곧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도 분다. 바람이 부니 걷기에는 좋다. 인제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고 읊던 곳이라 오지중의 오지로 알았는데 시내에는 체육시설 등 주민생활 편의시설은 물론 도서관 야구장까지 잘 갖춰져 있다. 인제가 고향인 시인 박인환의 기념관도 보였다. 박인환은 우리에게 <세월이 가면><목마와 숙녀>라는 명시를 남겨 노래가사로 인용되기도 했다.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 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중략)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인제를 벗어나려면 인제터널을 지나야 하나 사람 통행이 불가하여 우리는 군축령이 있는 가넷고개를 넘어야 했다. 어제 미시령을 넘은 실력으로 사뿐히 재를 넘어니 야생화가 너무 아름답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걷기 시작하니 커다란 강과 다리가 보였다. 옛날 자동차로 설악산이나 동해를 갈 때 많이 건너던 다리다. 강 아래는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있어 미국의 넓은 벌판에 온 것 같다. 다리를 건너서부터는 다시 자동차전용도로를 따라 걸어야한다. 4차선 국도로 확장하면서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은 옛 국도를 그대로 사용하여 이면도로가 없다. 오르막이라 발바닥도 더욱 아프고 가래토시까지 아파왔다. 원래는 홍천 가까이 있는 두촌면까지는 가려했는데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시계도 6시가 다 되어 간다. 길가에 있는 민박집 간판을 보고 전화를 하는데 아직 시즌이 아니라 손님을 안 받는다고 한다. 겨우 “강나루 언덕”이라는 곳이 민박을 한다기에 찾아가니 큰길에서 거의 500m나 더 들어간 강변에 있다. 그래도 잠도 잘 수 있고 식사까지 가능하다니 다행이다. 찾아가는데 고생은 되었지만 상호에 걸맞게 뜻밖의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갈로에 짐을 풀고 안채로 들어가니 소양강을 마주보는 넓은 창문 넘어 바라보는 경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주인집 아저씨가 나무로 온갖 조각품을 만들어 놓고 술도 여러 종류를 담아 두었다. 농업대학을 나왔다는 주인장께서 그 집에 터를 잡기까지 사연과 설악산 산삼 캐러 다니는 일 등의 이야기로 잔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주인장은 약속이 있어 나가고 안주인과 맥주를 마시며 노래방을 하는데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우 사장과 나는 피로와 다리부상으로 살며시 숙소로 빠져나오고 제일 팔팔하고 술 좋아하며 넉살 좋은 안 부장은 결국 주인아주머니와 한잔을 더 하고 온다. 첩첩산중이란 이런 곳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밤이 되니 하늘은 쪽배와 같은 달이 너무 멋있고 밤하늘의 별들은 히말라야에서 본 별보다 더 깨끗하게 반짝거렸다. 아! 이 아름다운 밤이여...

 

 

 

     

     소나무 숲(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만해기념관

농로를 걸으니 그래도 훨씬 부드럽고 좋았다.

우리가 아침에 만난 유일한 분

부지런한 강태공들,물이 참 맑다.

잊을 수 없는 쌍다리 쉼터-이곳에서 아침을 먹지 못했더라면....

고추밭

드디어 인제가 눈앞에 보인다.

감자꽃

슬픈 전설이 있는 리빙스턴교

인제 내린천 번지 점프장

인제를 벗어나 가넷고개를 오르며

자동차는 터널로 우리는 고개를 넘어

그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었다.

말없이 흐르는 소양강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들꽃 금계국이 정말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