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珉隨筆房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1)

혜안1952 2011. 11. 21. 23:03

 

희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

 

1.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트레킹을 떠나기 20일전부터 오지여행 전문가인 KBC 이정식 상무님과 준비사항 및 현지사정, 기후 등에 대해 정보교환을 하고 조를 편성하여 준비물을 점검하는 조별모임을 가지며 팀웍을 다졌다. 나는 금년에 두 번에 걸친 지리산종주로 대부분장비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겨울 등산복 등 몇 가지를 추가로 구입했다.     그리고 네팔과 희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공부했다. 우리 일행중   한분이 대원스님이 운영하는 site(
http://myhome.naver.com/buddhaeye/main.htm)를 알려주어 많은 참고가 되었다.
    네팔은 인도와 중국이라는 대국사이의 완충국으로 면적은 우리나라의 2/3, 인구 약2000만 명, 1인당 GNP US$180인 빈국으로 유엔이 지정한 보호국이며 1996년부터 내전으로 정정이 불안하여 경제사정이 어렵고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희말라야의 명산외에는 볼것이 없으나 다행히 세계 8000m 이상의 고봉 12개중 8개가 네팔에 있어 입산료등 관광 수입이 전체수입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등반가와 트레커들도 많이 가고 있으며 특히 엄홍길씨가 네팔에 있는 고봉들을 모두 올라 가끔 TV에서 히말라야 설경을 본 기억이 있어 낮설지는 않았다..
(*참고:1네팔루피=16원, 1 미달러=76.5네팔루피)

 

2. 인천국제공항에서 카트만두까지
     11월10일(월) 08:20 가이드로 동행하실 KBC의 이정식 상무님을 포함 우리 히말라야 트레킹원정팀 30명은 마치 초등학교시절 소풍갈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옷차림도 제각각 다르게 인천공항에 집결했다. 집에서 나올때는 초겨울, 저녁에 묵을 방콕은 한여름, 네팔은 초가을 날씨라니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입고 온 복장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여행을 나서니 검문검색이 상당히 엄격해진 것 같았다. 출국 수속중 X-Ray 검색대에서 손톱깍기와 등산용칼이 발견되어 다시 나와 타이항공사에 소포로 보낼려고 하니 분실 가능성이 100%란다. 10:50 타이항공 TG629편으로 홍콩을 경유 5시간만에 방콕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그랜드호텔에 짐을 맡기고 바로 한식으로 저녁을 먹은후 약2시간동안 스포츠마사지로 긴장을 풀고 숙소로 돌아왔다.
    11월11일(화) 호텔에서 조식을 한후 태국과 네팔은 공항검색이 더욱 심하다고하여 카메라 건전지와 어제 공항에서 찾은 등산용칼과 손톱깍기를 화물로 보낼 큰배낭에 넣고 짐을 다시 꾸렸다. 방콕에서 카드만두행 비행기가 하루 한번밖에 없어 10:30 발 비행기는 400석이 넘는 좌석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찼다. 네팔에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가 있어 성지순례를 떠나는 불교신자들도 많다고 한다. 어제 홍콩공항에서 Transit 할 때 지각으로 비행기출발을 지연시켰던 우리나라 여신도님들 일행은 인도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카트만두로 가는길은 상해,홍콩,방콕을 경유하는 세가지가 있는데,우리처럼 방콕을 경유하게되면 하루밤을 방콕에서 자야하므로 이틀이 걸린다. 그러나 얼마전 우리나라와 네팔정부간에 항공협정이 체결되어 내년쯤이면 서울/카트만두 직항로가 개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12:35(서울시간 3:50 시차 -3:15)에 카트만두 Trighuvan International Airport에 내리니 군인과 경찰의 경계가 삼엄하다. 지난해 왕자란과 마오이스트 문제로 지나칠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여 공항에는 장갑차 까지 동원되었으나 장비는 허술하게 보였다. 공항에는 현지가이드를 할 네팔인 라젠드라 샤카와 라젠드라 라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초면인데도 친근미가 있는 샤카는 작은키에 헐렁한 바지와 털모자 수염 때문에 시골 농부 같았으나 한국말을 꽤 잘 했다. 라마는 공사판에서 일하다 온 막노동꾼처럼 얼굴이 새까맜지만 영어가 유창하고 하얀 이가 보이는 환한 미소는 매우 착해 보였다.

 

3.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우리 일행은 네팔의 제2도시이자 트레킹 출발지인 포카라(POKHARA)로 가기위해 바로 옆에 있는 국내선 비행장으로 가는데 고장난 수화물 카터가 여기저기 버려져있고 마치 시골길처럼 비포장 도로를 지나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탑승수속을 하는 국내선 대합실은 우리나라 시골의 버스정류장보다도 작고, 흙먼지 바닥에서 추가 달린 저울로 배낭무게를 재고 있다. 라마는 비행기 좌석이 없어 먼저 떠나고 허름한 커텐속 컴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매점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다. 이 나라는 석회질이 많아 물 사정이 나빠서 우선 물 한 통을 사서 마셨다. 처음으로 루피를 사용했다. 우리가 탈 비행기의 출발시간은 아직도 1시간 가량 남았다. 너무 일찍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히 갈곳도 없고, 시원한 여기가 앉을 의자도 있어 좋았다. 20인치 만한 스크린에 나오는 비행기 스케줄을 보니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느새 탑승대기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얼굴이나 옷차림으로 봐서 힌두인이 많다. 특히 여자들은 얼굴이 꽤 예뻤다. 우리가 탈 비행기도 지연된다고 한다.   예정된 시간보다도 1시간이나 더 지연된 3:30에 탑승 안내방송이 있어 타러 갈려고 하니 또 몸수색을 했다. 국내선 비행기는 우리 일행 30명이 타니 좌석이 꽉차는 낡은 소형 비행기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 조종석이 훤히 보였고 스튜디어스가 바로 앞에서 주의사항을 영어로 읽는다. 비행기가 이륙하니 사탕 한개와 생수 한잔씩을 주고는 앉아서 영자신문만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약 40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포카라에 내리니 마치 고향에 온것처럼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고 날씨도 좋았다. 무엇보다 석양과 함께 보이는 설산의 연봉들이 멀지만 비행기에서 보다 더욱 또렷이 보여 우리들 가슴을 뛰게했다. 비행장은 허수룩했으며 마치 시골 기차역 같은 기분이 났고 우리는 비행장 안팎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화물차같은 낡은 버스지붕에 배낭을 옮겨 싣고 인근에 있는 Blue Bird Hotel에 도착하니 수위가 거수경례를 한다. 원래는 일찍 도착하여 페와호수가에서 맥주도 한잔하며 석양을 감상하기로 하였는데 비행기가 지연되어 한국음식점인 김치하우스로 바로갔다. 이집 주인은 구륭족인데 한국에서 음식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비슷하게 흉내를 내고 있었다. 불고기에 상추쌈과 반주를 곁들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거리의 상점에 나가 이것저것 보다가 100% 파시미나 목도리를 샀다. 원래는 25불인데  좀 비싼듯하여 사지 않을까 하다가 너무 깎는것도 예의가 아닌것같아 18불에 샀다. 집사람은 일체 선물을 사오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집에 여자수 만큼 3개를 샀다. 나중에 카트만두에 가서 보니 파시미나는 이곳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70%:30%가 제일 좋다고 했다.

카투만두 비행장 에서 나와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장으로 가는길.

길가에 무장 군경들, 어지러이 버려진 쓰레기등  첫눈에 우리나라 50~60년대초

를 상기 시키는 풍경이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타고간 30인용 경비행기

4. 트레킹이 시작되다.


 <포카라에서 나야풀로 이동>
  11월12일 3일째.   06:00 기상  06:30 식사  07:00 출발  날씨-맑음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트레킹이 시작된다. 멀리 높이 솟아오른 설산들을 보니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해 낼수가 있을까하는 두려운 생각이 머리에서 교차되었다. 호텔에서 넉넉히 아침식사를 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이런 음식을 구경도 할 수 없을테니까.....    은행소식으로 잠시 분위기가 침체되기도 했으나 직장과 가정일은 잠시 잊고 트레킹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포카라에서 트레킹 출발지인 나야풀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거리였다. 포터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호텔에서 우리 배낭을 싣고 드디어 장도에 올랐다. 포카라 시내에서 산행때 먹을 과일을 사기위해 버스가 잠시 멈추니 과일을 파는 리어카 행상들이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처럼 죽자사자로 덤벼들지는 않았다. 바나나,귤,사과등을 사고 생수를 사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산에서는 자연보호구역으로 프라스틱통의 반입이 금지되어 생수를 판매하지 않아 생수물을 사가지고 가던지 산장의 정수용 생수를 이용해야만 한단다. 버스에서는 포터들도 일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 기분이 덜떠 있었고, 밖을보니 가게마다 일찍 문은 열고 있으나 사러오는 사람도 물건도 거의 없었다. 약국은 진열대위로 샘플인지 서너개씩만 진열이 되어 있어 내가 어릴 때 산골시장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못했다.  그 옆에는 어학원이 있었다. English, Japanese, German, French, Nepali, Chinese를 가르친다고 되어 있는데 한국어가 없어서 섭섭했고 네팔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상했다. 샤카에게 물어보니 네팔에는 약70개부족이 살며 언어도 각각 다르단다. 거리은 아침이라 매우 깨끗했고 우리나라 1950-60년도와 비슷했다. 동네마다 사는 종족들이 서로 다르지만 대체로 힌두인이 많아 소가 거리를 활보했고 거리 중간중간에 삼성,대우,LG의 color TV 광고가 보여 우리종합상사 직원들이 이 오지까지 와서 전자제품을 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우리가 묵은 Hotel의 TV도 대우제품이었다. 나야풀까지 가는데는 마오이스트 때문에 여러번 검문을 당했다. 이래저래 50분 거리를 2시간 40분 걸렸지만 우리만 지루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 운전기사나 포터들은 어쩔수없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신기하고 안스럽기도 하였다. 우리가 탄 버스가 삐거덕 거리며 구비구비 비탈길을 돌아서 내려갈 때는 금방이라도 굴러 넘어질 것 같아 내려서 걸어가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야풀에 거의 다갔을 무렵 버스 한 대가 수로에 쳐박혀 있었다. 나야풀은 해발1070m의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ABC Trekking Course의 출발지가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곳이다.


출발지 나야폴에서


트레킹첫날. 나야풀에서 간두룽가는길.기대반 걱정반인데 초반의 가는길은 우리나라 강원도 산길이나 크게 다름없어 보인다.


물레방아-정말 놀랬지요.사람의 지혜는 어디나 대단합니다.


그런 산악지대에도 학교가 있고 선생님도있고 더군다나 교복까지 입다니..
<나야풀에서 간드룩까지>
10:40 포터들이 큰 배낭 2개씩을 머리띠로 묶어 이마로 짊어지고 우리는 가벼운 벼낭만 메고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목 양편에는 트레커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또 길에는 소,당나귀,말들의 오물이 가득차서 앞을 잘 보고 가야 했다. 하산하는 Trekker들을 보니 지친 모습보다는 만족감에 가득했다.  그런데 저 앞에 내려오는 포터 한명이 힘겹게 지나간다. 얼른 뒤돌아보니 몸무게가 소만한 서양여자가 고산증때문인지 실신해서 포터의 광주리에 얹혀 실려가고 있다. 덜컥 겁이 났다.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더니 우리나라 산길과 다름없다. 큰어려움 없이 점심을 먹기로한 Kimche에 도착했다.  포터들이 밀크티와 차를 가져왔다. 밀크티가 먹을만 했다. 사람숫자가 47명으로 늘어나 식사준비에도 꽤 시간이 걸리고 포터들은 40-50kg의 배낭을 지고 다니는데 식사때는 차와 식사 나르고 치우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그러면서도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식사를 기다리는데 늙은 아버지와 딸이 우리에게 다가와 전통악기를 켜며 노래를 구슬프게 부른다. 뜻은 모르지만 목소리가 맑아 듣기가 좋고 소녀가 너무 귀여워 동료들이 노래값을 주었다. 그들이 가자 이번에는 라마승려들이 독경을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그냥 돌아갔다. 드디어 첫 식사로 캬레와 빵, 스프가 나왔다. 식사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그런데로 먹을만 했고 특히 빵은 인사동에서 파는 중국호떡하고 비슷한데 아주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맑은 날씨에 지나가는 비려니 하고 기다려도 그치지 않는다. 이윽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장대비로 변하더니 땅콩만한 우박까지 떨어진다. 산에서 사람만 만나지 않으면 마치 우리나라 산을 걷고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제서야 우리가 열대지방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아 각자 우비를 걸치고 걷기 시작하자 kbc 이상무께서 난감해 한다. 건기라 비가 올 확율은 거의 없으므로 우비는 별도로 준비하지 아니해도 된다고 하신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비탈진 계곡이 점점 가파라진다. 간드룩은 1940m로 나야풀보다는 870m나 높다. 다시 비가 그치니 맑은 하늘이 보이고 들판에는 가을 추수가 한창이다. Kimche에서 Gandruk까지는 약4km인데 계단이 4,252개란다.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오후 5:30에 드디어 간드룩 Hotel Trekkers Inn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꽃과 잔듸가 예쁘다. 말이 호텔이지 산장이다. 그래도 내방은 운좋게도 화장실과 샤워실이 붙어있다. 간드룩에 오니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처레의 장엄한 설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차푸차레는 고기의 꼬리와 비슷하여 Fish Tale 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Gandruk은 구륭족들이 사는 마을로 ACAP(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
의 H.Q 가 있다. 희말리야를 등산하거나 트레킹을 하기위해서는 ACAP에 Entry Fee를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나의 Entry Permit No는 56822 이고 매년 약76,000명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니 피로가 엄습해오며 그냥 자고싶은 생각뿐이었다. 밖이 너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이층식당에서 포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한바탕 놀고 있었다. 저녁식사로 캬레밥과 국, 빵, 계란등이 나왔다. 저녁 식사후에는 깜짝파티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이 일행중 안광희지점장의 생일 이었다. 생일케이크와 주안상이 차례지고 노는데는 2등가라면 서러운 안지점장이 멋진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잡는다. 샤카가 포터를 대신해 선물로 행운의 노란 실크목도리를 목에 감아준다. 한바탕 떠들고 노니 시간이 금방 가고 피곤이 엄습해와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않아 화단으로 나와 하얀의자에 앉아 하늘의 별을 감상하니 다른 동료도 몇 명이 나왔다. 그제서야 동쪽 고봉에서 달이 떠오르고 하늘에는 초롱초롱 별이 빛났다.


 롯지에서- 뒤에 보이는 산이 희말라야 명산들


롯지에서 양고기 파티
<간드룩에서 촘롱까지>
   4일째.  산에서 첫 번째 맞는 아침.   6:00 기상,  7:00 아침식사,  7:30 산행시작
간밤에 집사람이 꿈에서 보였다. 궁금했지만 어쩔수 없다. 전날 비온뒤라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아침햇살에 비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은빛 설경이 장관이었다.오늘은 촘롱까지 해발로는 230m만 올라가면 되지만 실제는 600m를 내려가서 다시 830m를 올라가야 한다니 단순히 1430m를 걷는것보다는 훨씬 힘들 것 같다. 아마 트레킹일정중 가장 힘든 하루가 될 거란다. 마을을 지나가는데 어린아이들이 세수를 안했는지 코를 흘리며 나마스테(NAMASTE:안녕하세요)하고 달려온다. 사탕을 하나씩 주니 집집마다 아이들이 다 튀어나온다. 마을을 벗어나니 내리막 계단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청계산 만경대 거리 만큼을 내려 갔다가 북한산 만경대 높이 만큼을 올라가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리막에는 정말 양폴이 필수다. 여기는 나무보다 돌이 더많아 계단들이 대부분 돌로 되어있고 집들의 지붕도 돌로 만들어진 곳이 많이 있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큰 냇가가 있어 잠시 웃통을 벗어 땀에 젖은 옷을 바위에 말리고 햇볕을 쬔다. 어떤 동료는 맨몸으로 재빠르게 목욕도 했단다. 그옆에는 우리나라 시골의 물레방아 같은 것이 있다. Kimrong에서 점심을 먹고 그제서야 나의 포터와 통성명을 했다. Barn Bahadur Tamang이라고 해서 타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KBC 이상무께서 주신 커피쨈을 빵에 발라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다시 촘롱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돌계단과 오르막을 지나야 했다. 특히 탈진할 정도로 가파른 마지막 계단을 지나 촘롱 마을입구에 도착하니 고산병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 해발 2,900m~30,000m가 넘으면 고산병이 오고 두통,식욕부진,의욕감소,무기력등 다양한 증상이 오며 고산병에는 약이 없으니 천천히 걷고 알콜(술)을 먹지말고 만일 고산증이 오면 휴식과 하산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촘롱 도착시간 오후3:40. 오는길이 힘들기도 했지만 소,당나귀들의 오물이 길에 즐비하여 그것을 피하느라고 더욱 신경을 썼다. Chomrong의 숙소는 Excellent View Point Lodge로 규모가 제법 큰 이층집이다. 이곳의 숙소 이름에는 Heaven view hotel, Summit view hotel등 View가 꼭 들어갈 만큼 경치가 빼어났다. 우리가 묵을 숙소도 이름처럼 경치가 정말 좋았다. 건너편에 수백개의 계단식 농지와 집들, 수백미터 아래에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 멀리 South Annapurna,Annapurna Ⅰ, Hiunchuli, Machhapuchre등 설산의 연봉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늘은 가장 힘든날로 영양보충이 필요하다고 하여 특식으로 양을 한 마리 잡기로 했다. 숙소는 2층에 4인용방을 배정 받았다. 화장실과 세면장이 뒤에 별채로 떨어져 있다. 이층에다 나무로 엉성하게 지어져 저녁에 추위로 고생 좀 할 것 같다. 롯지에서는 자가발전이나 태양열을 이용하므로 온수공급이 넉넉지 않다. 내가 늦었는지 더운물이 이미 떨어져 발과 얼굴만 겨우 씻고 방에 와서 침대에 누웠다. 벌써부터 추위가 엄습해와 침낭속에서 누워있는데 고기냄새에 진동하여 마당으로 내려갔다.  돌판위에 구운 양고기가 먹음직스러웠다. 라마가 긴 막대기로 하나 먹어보라고 건넨다.  잡은지 한시간도 안되어서 그런지 고기 한점으로 저녁내내 먹어도 될만큼 질기다. 고추도 무진장 맵다. 소주가 떨어지고 히말라야 양주(?)가 나온다. 양주라야 소주맛 반도 안된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래도 사람이 많고하니 고기가 금새 없어진다. 다시 저녁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가니 빵,캬레밥,양곰탕 등 진수성찬이다. 이런 오지 산마을에서 이렇게 포식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산행을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나오니 날은 어두워지고 모닥불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서 그동안 산행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저녁에는 동네 주민들이 마을기금 마련을 위한 민속춤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어 모두들 방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소문을 듣고 왔다.  밤 8시경에 하늘의 별을 보니 평소보다 더 크게 보였고 달 뜨는 모습이 마치 해돋이 같았다. 이윽고 동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어른 아이 할것없이 대략 20-30명이 마을 촌장님의 인솔하에 몰려왔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민속북을 두더리기 시작하니 촌장님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샤카와 라마도 도저히 못 참겠는지 춤판에 뛰어든다. 술기운이 거나한 우리 동료 서너사람도 합세했다. 축제가 한참일 무렵 KBC 이상무께서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하니 유창한 영어를 하는 건장한 현지인 몇사람과 같이 숙소로 갔단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이 소위 마오이스트란다. 권총도 차고 있고 장총도 가지고 있었단다. 그들은 우리에게 입산료를 받으로 왔다. 그제서야 촘롱마을 입구의 시멘트문위에 “No Admission without Maoist Permission'라고 종이위에 적은 경고문이생각났다.  네팔에서는 6000m 이상을 오르는 등산에는 비싼 입산료를 받고, 그이하를 걷는 트레킹에는 롯지나 식당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저렴한 입산료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포카라에서 1인당 1,000루피(한화 약 16,000원-입산 허가증에는 2000루피라고 되어있음)씩을 지불했는데 마을입구 check point의 정부군은 도망가고 마오이스트들이 다시 받으러 왔다. 이상무께서 할 수 없이 그들과 협상을하여 1인당 500 Nepal Rp씩을 주었단다. 결국 입장료를 억울하게 두번 지불한 것이다. 지난해 입산료 문제로 한국인이 여기서 마오이스트와 다투다가 권총을 머리에까지 겨누는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간적이 있단다. 그사이 공연장은 난장판이 되고 언제 나타났는지 롯지 아래 빈터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던 서양친구들도 같이 어울려 논다. 하늘에는 만월에 가까운 달이 비치고 사탕만한 별들로 꽉 찼다. 몇몇 무희들은 익숙한 춤솜씨로 춤도추고 사진도 같이 찍는다. 그러나 아직 어린 처녀들은 부끄러움을 많이타고 돈을 주어도 수줍어한다. 마지막으로 무희들이 우리들 목에 그들이 직접 만들어 온 금잔화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며 트레킹동안의 행운을 빌어주고 그들은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난 자정 가까이 되어서 돌아갔다. 춤 값과 금잔화 목걸이 값 등으로 우리가 지불한 돈은 미화100불 이상은 될 것 같다. 미확인 소문에 의하면 그 돈 중 일부를 마오이스트에게 바쳐야한다고 하니 마을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산악지방이라 정부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고 잠 못 이루는 동료들이 아직도 꺼져가는 모닥불 주위를 둘러섰다.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먼 설산의 연봉들이 달빛에 비치어 더욱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역시 지대가 높은 만큼 밤 기운은 찼다.

드디어 순달이들이 온데요.그전에 권총차고 나타난 마오이스트들때문에 잠시 긴장하긴했지만.


 롯지에서 함께 춤추며 놀던 동네 처녀


<촘롱에서 히말라야까지>
   산에서 3일째(통산5일째) 아침.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쳐레의 꼭대기에 눈보라가 날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날씨가 좋다. 어제저녁 공연 때문에 6시간밖에 못 잤다. 아침 스프로 나온 닭고기도 역시 질겼다. 오전 7:30 산행시작. 여기서는 해가 짧아 아침에 일찍 출발하고 저녁에 최대한 일찍 도착하여 휴식을 취해야한다.  오늘은 Bamboo에서 점심을 먹고 Himalaya(2,920m)까지 가야한다. 동네 아이들의 Namaste 와 Hellow Sweets 이라는 인사를 받으며 마을을 벗어나자 내리막이 시작되고 가파른 돌계단에 야크 배설물이 가득하다. 시누와는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2시간반이 걸렸다. 우리가 하산할 때 첫날밤을 보낼 Sinuwa에 도착하니 롯지 지붕마다  Running Solar Hot Shower라고 적혀있다. 아마 여기서부터 전기가 잘 안 들어오나 보다.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는데  S지점장이 환타를 한턱 쏜다. 허름한 부엌에서 수줍어하는 순달이가 늦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에 식사를 4번씩 한다고 한다. 8시에 빵과 차나 밀크,9-10시에 밥과 캬레,오후2시에 점심 오후5-6시에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부엌에서는 주전자로 차를 다리며 옥수수도 굽고 그위에 천정에서 양고기를 메달아 기름기를 빼며 상하지 않토록 했다. 쉬는 도중 포터들에게 사탕과 쵸코렛을 건넨다. 이들은 한 개를 주어도 꼭 서로 나누어 먹고 혼자만 먹는 법이 없다. 심지어 잘 모르는 포터 끼리도 나누어 먹는다. 산 사이들의 의리인지 고산에서 살아남는 지혜인지 모르겠다.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지고도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체 말없이 오르는 그들을 보니 그들의 고달픈 삶이 짐작이 갔다. 드디어 정각 12시에 뱀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후 오후 1:30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식사시간이 휴식을 할 수 있어 필요하나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한팀은 휴식시간동안 잠시 짬을 내어 훌라 게임을 하기도 한다. 날씨가 흐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열대우림이다. 좌우로 숲이 우거져 하늘을 볼 수가 없다. 우측 낭떨어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뿐이다. 장마때 지리산 뱀사골 물소리처럼 무섭게 들린다. 우기철에는 거머리 때문에 무척 고생을 한다는데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다. 건너편 산에서는 산꼭대기부터 폭포물이 쏟아져  하얀 포말을 뿜으며  수십갈래로 찢어져  계곡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지역을 지나며 우리는 특히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유럽인이 주로 많고 미국인과 일본인은 최근에는 많이 줄었단다. 도반까지 1시간 남짓 걸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수력발전기를 이용하여 약간의 전기를 만들고 있었다. 티벳 문화권인지라 지붕 높이 대나무 깃대에 불경이 가득 세겨진 빨강,파랑,노랑,힌색의 사각천이 바람에 나부낀다. 깃발이 한번 나부낄 때마다 경전을 한번 암송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단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 후 400m도 넘는 오르막길을 1시간 반만에 걸어서 오후 4시에 Himalaya Guest House에 도착했다. 고도가 3,000m 가까이 되니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밤에 전기가 없으니 5시경에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히말라야에서 ABC까지>
   산에서 4일째 아침. 5:30 기상, 6:00 아침식사, 7:00 산행 출발, 오늘은 최종 목적지인 ABC까지 가는 날이다. 벌써부터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 산장에서는 설봉들의 모습이 고봉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푸른 고봉들을 모두 제치고 마차푸처레를 바로 앞에서 쳐다 볼 수 있는 날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발하였다. 날씨가 좋아서 그럴 염려가 없지만  Avalanche 협곡을 10시전에 통과해야 한다. 그곳은 간간이 눈사태가  일어나므로 햇볕이 따사로워 지기전에 위험에서 벗어나야한다.  1시간 반만에 마지막 휴식지인 Durail에 도착하였다. 오는 길섭마다 들꽃이 많고 취할 정도로 향기가 짙다. Black Tea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가는데 길이 산으로 가지 않고 자꾸 계곡으로 내려간다. 물소리도 점점 위협적으로 들린다. 앞의 산들에 가려 설봉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드디어 Avalanche Track에 들어서니 계곡에는 집채만한 돌들이 여기저기 늘려있고 부드럽게 보이는 모래는 석회질이어서 매우 단단하다. 지난 겨울 산에서 굴러 떨어진 눈덩어리 하나가 아직도 녹지 않고 그냥 있다. 이제부터는 숨이 차기 시작하여 서로가 말이 없고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며 걷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커다란 바위에 동판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2002.3.3 네팔인(포터) 1명과 독일인 3명이 Avalanche Track에서 눈사태로 사망하여 그들을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포터의 말을 무시하고 트레킹을 강행하다가 여기서 눈사태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죽은 독일인도 안됐지만 하루에 300루피(약5,000원)를 벌기위해 100kg에 달하는 짐을 지고 산을 오르며 목숨까지 잃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포터들의 생활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20분 드디어 마지막 숙소인 MBC(Machhapuchhre Base Camp)에 도착하였다. 눈이 부셔서 설산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너무 맑다. KBC 이상무께서 여기는 날씨가 좋아도 ABC(South Annapurna Base Camp)는 또 달라 오후에는 일기 변화가 심하여 설봉들을 볼 수 없을지 모르니 내일 새벽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만일 내일 간다면 새벽 3시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과 내일 산행이 하산이라 해도 시누와까지 10시간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우리는 여러차례 협의를 한 결과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오늘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고산증으로 입맛이 없어 빵과 스프만 조금 먹고 물과 카메라를 챙긴 뒤  방한복,선글라스,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한 후 ABC로 향했다. 고산증과 심한 피로로 도저히 갈 수 없는 동료 6명은 MBC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마 여기가 식물의 한계지인지 MBC에서 ABC로 가는 길은 누렇게 익은 갈대류만 있는 황량한 벌판이었고 배낭도지지 않은 맨몸인데도 세찬 바람과 안개비로 한발을 내 딛기가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찼다. MBC에서 ABC까지는 완만한 경사지만 고산증으로 머리가 아프고 호홉이 가빠서 빨리 걸을 수 가 없었다.  약430m 의 거리를 2시간만에 겨우 후미로 도착하니 먼저 온 동료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며 연달아 후레쉬를 누른다.  그러나 4,130m라는 표지판에서 기념사진을 찍을려고 하니 정작 안나푸르나의 위용은 볼 수가 없다. 이상무의 말씀대로 그 좋았던 날씨가 구름에 가려지더니 도대체 없어지지 않는다. 겨우 잠시 걷혔다가 다시 구름에 갇히고 하여 저 아래 촘롱에서 보았던 위용을 보기가 어렵다. 구름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라마가 산들의이름을 설명한다. 좌로부터 Hiunchuli(6441m),Annapurna South(7219m),AnnapurnaⅠ(8091m), Baraha Shikhar(7647m), Gangapurna Himal(7454m), Annapurna Ⅲ(7555m),Machhapuchhre(6993m) 등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ABC Lodge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올라서 구름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설봉을 보니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신비했다. 롯지 식당에서 S지점장이 밤새 수확한 자금으로 커피를 한잔씩 돌렸다. 큰잔은 양이 너무 많았으나 주인은 무조건  큰잔으로 가지고 왔다. 요금이 거의 2배이니까 매상이 꽤 올랐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숨은 덜 찼지만 맛바람 이라 더 추웠다. 1시간10분만에 내려오니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전기가 없으니 랜턴이 필요한데 어제 히말라야 숙소에서 두고 온 것 같다. 여기는 통신수단도 없어 전화도 못하고 숙소도 마침 어제 저녁에 MBC Lodge 주인이 히말라야 롯지 까지 내려와서 예약을 받아갔다고 했다. 나는 ABC에 다녀와서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먹기가 싫고 속도 울릉거려 움직이기도 싫었다. 식사도 못하고 겨우 세수만 한채로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는데 움직이기가 귀찮다. 밖에서는 누군가 두퉁이 심해 밤에 하산해야 하느니 하며 법석이었으나 내 몸이 천근이라 남의 일에 귀 기울일 때가 아니었다. MBC에서 마시려고 서울서 가져와 아껴두었던 소주도 못 마셨다. 한참을 자다가 소변 때문에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깜깜한 밤중에 오염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별들이 그야말로 금빛처럼 반짝인다. 3700m의 밤하늘에서 본 하늘은 어릴 때 시골에서 한 여름밤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할머니 허벅지에 누워 쳐다보던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또렸 했다. 결국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다음날 아침까지 잤다.

 

MBC에서 ABC가는길은 고산답게 검은 바위들판에 작은 관목이나 풀들만  자라고 있다.

그날 따라 때로는  맑은 하늘에 구름의 변화가 심하였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코스의 종착지인 4300m의 베이스켐프에 도착하다. 고산증으로 고생좀 했지....


구름에 가린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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