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珉隨筆房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

혜안1952 2019. 12. 22. 11:36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

 

  1971년 여름이 끝날 무렵 서울에서 재수 생활을 하기 위해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집안 형편이 좋았던 친구들은 봄부터 와 있었지만 나 같이 하숙비가 부담되는 친구들은 하반기가 시작될 무렵 올라왔다우리는 주로 종로에 있는 종로학원과 양영학원 그리고 광화문의 대성학원엘 다녔다. 그래서 하숙집도 주로 사직동이나 옛 경기고등학교(지금의 정독도서관) 뒤 삼청동에 있었다. 한 집에 여러 명이 같이 있으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서로 다른 집에서 하숙하며 가칭 재수생 본부를 사직동 골목 맨 아래 집에 진을 친 K의 하숙집으로 정했다. K의 하숙방에는 전국재수생본부라는 기다란 벽지로 현판식을 하고 오가며 입시정보도 교환하고 가끔 막걸릿잔도 기울이며 회포를 풀기도 했다. 내가 기거했던 하숙집은 사직동 맨 꼭대기 집이어서 자동차가 집 앞까지도 올 수 없었다. 지대가 높으니 사직동 일대가 다 보이고 앞산 언저리에는 기상대가 있었고 멀리 남산도 보였다.

 그 집 하숙집 아주머니는 다행히 대구분이었다. 아들도 경북고를 나와서 삼수 끝에 서울공대를 다니고 있었다. 하숙생이 일곱 명가량 있었는데 경북고 출신들이 많았고 검정고시 출신도 한 명 있었다. 앞집에는 당시 풍문여고 야간에 재학 중인 여고생이 있었다. 우리는 여고생의 등교 시간인 저녁 무렵이면 마당을 어슬렁거리거나 괜히 하숙방 창문을 열어두곤 했다. 하숙집에도 아들 외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다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다가 마주쳐도 서로 수줍어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딸이 군복을 입은 씩씩한 현역군인을 데리고 왔다. 아마 애인을 가족에게 소개하려고 왔던 것 같은데 쉽게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퇴짜를 맞은 것 같았다. 그 후로 그 군인을 보지 못하여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루하루가 학원과 하숙집을 개미 쳇바퀴 돌 듯이 왕복하는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다. 어쩌다 향토장학금이 올라오면 우체국에 가서 찾거나 어머니가 옷가지를 보내주시면 서울역 소화물창고까지 걸어가서 찾아오곤 했다.

언젠가 한 번 버스를 탔더니 버스 안내원이 오라이~”하며 승객들을 배치기로 밀어붙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날 밤 하숙방에 누우면 억센 사투리만 듣다가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간지러웠던지 귀에 맴돌아 잠을 설치곤 했다.

 서울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학원 생활은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하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서 하루는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막상 학원엘 나오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종로2가까지 걷다가 무작정 버스를 탔다. 정릉 미아리고개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는 사람이 만원이어서 나는 서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니 길거리에 낙엽이 뒹굴고 바람이 차가워 바바리코트나 외투의 카라를 세우고 사람들이 어디론가 열심히 오가고 있다. 나도 언제 저렇게 서울 거리를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버스가 혜화동 로터리를 막 지나 정류장에 정차했는데 어떤 아가씨가 차비를 못 내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당시는 버스를 빨리 태우기 위해 차비가 후불이었는데 아마 차비를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깜박 잊고 가져오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비가 없어 내리지도 못 하고 울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대신 차비를 내주고 나도 같이 내렸다. 그녀는 내려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여 괜찮다고 하며 돌아서니 나도 가슴이 뿌듯하고 좋았다. 그녀는 로터리 쪽으로 걸어 내려가고 나는 특별한 목적이 없으니 버스가 가는 창경궁 높은 담벼락을 따라 걸어갔다. 한 참 후에 누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그녀가 내 쪽으로 달려오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게 오더니 내가 사는 곳이나 학교라도 알고 싶다고 하며 그 돈은 꼭 갚겠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을 거절해도 막무가내여서 주소를 가르쳐 주려고 해도 집 주소도 모르고 마땅히 알려줄 곳이 없어서 그냥 종로 대성학원 재수생이라고만 말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하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나는 어둠이 짙어 올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하숙방으로 왔다. 머리가 좀 풀렸는지, 아니면 많이 걸어서 다리에 피로가 쌓였는지 그날 밤은 정신없이 잠을 잤다.

 그리고 며칠 후 학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가씨가 우리 교실 창가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복도로 나갔더니 내가 며칠 전 차비를 대신 내어 준 그 아가씨였다. 그녀가 고맙다고 하며 저녁을 사겠다고 하여 우리는 광화문 어느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혜화동의 어느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그녀는 광화문 국제극장(지금의 동화면세점 자리)에서 영화 부활을 보자고 해서 나는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아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그녀의 간청에 못 이겨 따라갔다.

처음으로 서울의 극장을 가보았다. 내부는 화려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영화 상영 전 대한뉴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내용이 내게는 좀 어려웠다. 그래도 아가씨와 같이 앉아있으니 좋기도 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가방을 나에게 맡기고 나갔다. 한참을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영화 중간에 들어오기가 미안해서 뒤 어디선가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환하게 들어와도 그녀는 없었다. 밖으로 나와서 여자 화장실 앞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무슨 배탈이라도 났는지 궁금하고 불안했지만, 여자 화장실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관람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살짝 여자 화장실로 가보니 문이 열 개나 있었다. 이름도 몰라서 저기요 누구 안에 없어요.”라고 해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벌컥 겁이 났다. 화장실 문을 하나씩 열어 볼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마지막 화장실 문을 열 때는 차마 볼 수가 없어 내가 기절할 것 같았다. 거기도 없었다. 더욱 궁금하고 불안하였다. 그때서야 그녀의 묵직한 가방을 열어보았다. 가방 안에는 놀랍게도 돈다발이 들어있었다. 내가 호의로 받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떨려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슨 함정에 걸린 것 같았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으며 왜 이 많은 돈을 나에게 맡겼을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광화문 파출소로 갔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돈을 맡긴 후 하숙방으로 돌아와서도 너무 불안하여 그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예비고사 원서를 내고 입시 준비에 매진하느라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삼사십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에게 잠깐 보자고 한다. 인상도 별로 좋지 않은 데다가 가죽 잠바를 입고 있는 그들을 보니 첫눈에 봐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가보면 안다고 한다. 그래도 누군지는 알아야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하니 형사라고 하며 신분증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따라나섰는데 골목을 한참 걸어 내려갔더니 검은 지프가 한 대 있었다. 정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 극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뇌리에서 다시 살아나서 더 불안하였다. 그 돈 때문일까? 그 여자가 잘못된 것일까? 종로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나를 보고 똑바로 말하라며 겁박을 하였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더욱 나를 거세게 몰아쳤다.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이유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기만 했다. 그들은 안 되겠다며 나를 더 안쪽 취조실로 데려가더니 마치 범죄자를 다루듯이 하였다. 나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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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오늘은 학원에 안 가나?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 후에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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