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공화국
松珉 김수진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것을 음식에 국한 한다면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밥은 안 먹어도 커피를 안 마시고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에 관계없이 커피 마시는 일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자고나면 구수한 커피부터 찾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커피 잔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호텔 로비를 비롯한 대형빌딩에는 당연히 커피숍이 있다. 어두컴컴한 빌딩 지하에 있던 옛날식 다방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무역상품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먹거리다. 커피 최대 생산국은 브라질로 세계 커피의 3분의1을 생산하며, 최대 소비국은 미국, 1인당 연간 소비량 1위는 프랑스이다.
커피숍은 어느새 도심 속 휴식.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 요즘은 서울의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카페골목, 부암동, 이태원이나 분당 정자에는 마치 유럽의 어느 거리처럼 커피하우스에 테라스까지 갖춘 노천카페가 집단으로 몰려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은행에도 고객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커피숍이 있고 거리의 중심가나 좋은 위치에는 커피숍 상호가 마치 미국이나 유럽처럼 알파벳으로 대문짝만하게 보인다.
커피는 그 종류와 커피 볶는 기술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하여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이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찾아 커피메니아들이 찾고 있다고 하니 기호식품치고는 성공한 사업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토종커피숍인 모 커피체인은 매월 커피 점을 30개씩 석달마다 100개씩 현재 3년 만에 5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냈다. 조만간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해외 1호점도 오픈할 예정이고 2015년에는 연매출 1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니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커피 소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사업은 아직도 초기에 불과하며 미래의 유망사업 중 하나라고 하니 나도 더 늦기전에 동해안 바닷가에 창넓은 찻집이나 차리고 싶다.
외국에 가서 음식 주문을 할 때 메뉴판에 온통 영로 쓰여 있어 애를 먹고는 했는데 모처럼 커피숍에 가면 주문하기가 힘들다. 커피이름이 생소한데다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왠 종류가 그렇게도 많은지 차라리 양식처럼 친절하게 재료가 무엇무엇이고 맛이 어떻다는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커피종류도 남미에서 주로 생산되는 아라비카 커피와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로부스타 커피, 둘로 나뉘는데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원두의 7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는 커피 종류만도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커피 값은 또 그리도 비싼지? 일인당 커피소비량이 세계1위인 프랑스에는 에스프레소 한잔에 2000원도 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은 자장면 값과 비슷한 게 커피 값이다. 웬만한 식사 한번 값과 맞먹는다. 시골에까지 이런 유행이 퍼져 옛날에 한량들이 아가씨 얼굴 한번 보러 가던 다방이 이제는 장날이면 의례 들러는 쉼터가 되었고, 들에서 농사를 짓다가 새참 때가 되면 배달커피를 마신다. 손님이 와도 냉커피에 얼음을 타서 내 놓는 게 당연시 되고 있다.
대구의 모 공단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영세공장들이 모여 있는 공장에는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탄 아가씨들이 물통을 배달한다.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공장 사장님은 출근하면 커피부터 주문한다. 손님이 와도 커피 주문은 자동이다. 커피 값도 다방에 가서 먹는 것보다 더 싸고 사무실에서 커피를 타는 것보다 더 빨리 배달이 온다. 그뿐인가 역전 대합실 고속도로휴게실이나 사무실 심지어 길거리에 까지 커피자판기가 있다. 사람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1번이 화장실이고 2번이 커피숍 앞에 줄 서는 일이다. 그러고 모자라 집집마다 인스턴트커피가 있고 좀 산다는 사람들은 커피 믹서쯤은 하나 있다고 한다. 산에 가도 커피를 집에서 타 가지고 온다. 요즘은 아예 휴대용 커피가 나와서 뜨거운 물만 넣으면 현장에서 커피 향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커피나무 한 그루 없는 우리나라에 누가 이렇게 우리의 입맛을 길들여 놨을까.
커피소비국이 주로 유럽이나 북미의 북쪽에 있고 생산국은 대부분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남미와 아프리카인 남쪽에 있다. 이것이 무역량을 늘릴 수밖에 없고 단일 식품으로 소비량이 세계1위일 것이다. 커피숍도 가맹점 1위가 토종브랜드지만 대부분 외국 브랜드가 많다. 솔직히 나는 계란을 띄운 쌍화차가 훨씬 맛있고 마시는 입장에서 보면 더 경제적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 귤나무를 모두 베고 커피나무를 심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나라마다 달라 미국인들은 주로 테이크아웃 문화로 블랙커피에 물을 잔뜩 타서 큰 머그잔이나 컵에 들고 다니면서 벌컥벌컥 마시는 반면, 프랑스인들은 우아한 카페에서 앙증맞은 작은 커피 잔에 짙게 내린 에스프레소를 홀짝홀짝 마신다. 프랑스에서 미국식 커피를 주문할 때는 ‘café allongé ’라고 한단다. 물을 많이 탄 커피란 뜻이다. 파리지엔느들은 따스한 햇살 떨어지는 야외 카페에 앉아 딱 한 입에 털어 넣어도 모라랄 것 같은 쪼그만 커피를 시켜두고, 초콜릿 하나 입에 물고, 유유히 커피를 한입한입 음미하며 담소를 나눈다. 우리는 어떤가? 커피숍은 마치 딱딱한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옆 사람 이야기가 더 크게 들리고 마치 선술집처럼 시끄러워 대화가 쉽지 않다.
커피숍은 이제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작고 낡은 테이블에 앉아 긴 대화가 이루어지고,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곳이 바로 파리의 카페처럼은 아니더라도 삶에 찌든 도시인들이 술집보다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잔이 생각나니 커피공화국의 국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