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珉隨筆房

일본,일본인

혜안1952 2011. 8. 13. 11:44

               일본, 일본인

                                                                       김수진


  얼마 전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그동안 나와 아이들의 직장관계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곤 온 가족이 같이 여행을 한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번에 아이들이 휴가를 내고 나도 어렵사리 시간을 맞추어 짧은 일정으로 갔다. 큰딸이 호텔을 예약하고 둘째 딸이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머지 경비는 내가 내는 식으로 경비를 분담했다. 여행지는 아내가 가까운 일본을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고 하여 오사카로 정했다. 지진으로 대재앙이 발생하고 최근 독도문제로 민감한 시기여서 처음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원전사고로 안전문제가 염려되었으나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요즘처럼 여행객이 적을 때가 적기라 생각되어 강행을 했다.

 자유여행이라 부담도 없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하였다. 비행기도 저가항공을 탔고 호텔도 비즈니스호텔로 하였으니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이 잘 되어 있는 일본인지라 공항에서 지하철 표를 구입해야 하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칸사이스루패스 2일 권은 공항안내소에서 당일권인 주유패스는 칸사이쿠코역에서 따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칸사이쿠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우리가 노선표를 펴 놓고 내릴 역을 세며 옆자리에 앉은 일본 아가씨에게 확인을 하니 다행히 그 아가씨가 영어를 꽤 할 줄 알았다. 그 아가씨는 우리 작은애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며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우리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중에는 서로 명함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금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오사카에 거주한지가 5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 숙소가 있는 니폰바시역까지 오는 동안 2번을 갈아타야 했는데 같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또 오후에 잠깐 몇 시간의 시간 여유가 있으니 관광안내까지 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귀가 솔깃했지만 너무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사양했으나 첫날부터 기분이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하고 오후에 오사카성을 구경하러갔다. 성 주변에서 입구를 찾는 도중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상당히 많지만 건강해 보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쉬는 중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한국인이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본인은 재일교포라며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띠며 반가워하였다.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성은 우리에게는 영원한 원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세운 성이었으나 성의 뒤편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는 그의 아들 도요토비 히데요리의 자결 비를 보니 권력의 무상함과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성을 구경하고 우리가 반대방향으로 나오니 지하철 안내판이 안보였다. 다행히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이 애완견을 데리고 자전거 산책을 나오셨다. 지하철역을 여쭈어보니 설명을 하시다가 본인을 따라 오라고 하신다. 뒤따라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일행보고 베이징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며 본인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오래 전에 은퇴를 하였고 연세가 82세라고 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다고 하시면서 일부러 산책을 포기하고 약15분이나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같이 동행을 하였다. 지하철입구에까지 와서는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시며 좋은 여행을 하라고 격려까지 하고 가셨다. 우리가족은 뜻밖의 일본인의 친절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의 절정은 그 다음 날 저녁에 또 한 번 일어났다. 시내중심가인 도톤보리에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난바역으로 가는데 역이 보이지를 않았다. 밤이라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고 부자나라인 일본에도 노숙자들이 상가주변에서 잠자리를 펴고 있어 좀 무섭기도 하던 차에 마침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하는 중년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우리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난바역까지는 너무 멀어 신사이바시역에서 타고 한번 갈아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며 따라 오라고 하였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같이 가는 동안 그녀는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며 특히 대장금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와 일어로 재미나게 이야기하며 지하철역까지 꽤 멀리 걸어왔다. 그녀는 지하철 입구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지하까지 내려가자고 하더니 우리가 개찰구에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되돌아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줄 알았다면 가방이나 들어줄 걸 우리는 같이 지하철을 같이 타러 가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일본인들이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일본사람의 진심어린 친절을 몸으로 겪고 나니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물론 그동안도 일본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은 없다. 그러나 언론매체에서는 일본인을 좋게 평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본과 우리는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이고  일제 강점기 때 그들의 만행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요즘도 독도를 들러 싸고 일본정치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럼에도 얼마 전 일본의 모스님이 일제 강점기동안 일본의 만행을 사과하기위해 도보순례를 하는 것을 보면 일본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참 알 수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미워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익에 관한한 경계를 하고 철저히 맞서야 하겠지만 기술이나 생활방식 좋은 관습은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인의 친절과 남을 위한 배려는 본받을 만하다. 지하철에서 우리처럼 장사를 하거나 떠드는 사람을 볼 수 없고 문고판 서적을 조용히 읽고 있는 그들을 보자니 존경심마저 나왔다. 외국인의 이민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외국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일본의 이중성을 보며  일본인들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외국인이 많이 오는데 이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다문화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아시아지역에서 온 결혼이주자와 새터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경제적인 어려움 보다는 한국 사람들의 냉대와 불친절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부끄러웠다. 자기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절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외교라는 게 따로 있겠는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베푸는 친절이 가장 큰 외교가 아닌가 생각된다. 머릿속에는 얄미운 일본인들로 각인되어 있는데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들의 친절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일본인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가족이 이 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친절을 실천하는 것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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