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선물
김수진
아내가 가구점에 가자고 한다. 나는 ‘나이 들어 웬 가구냐’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집에 급하게 필요한 가구도 없을뿐더러 가구라면 값도 만만찮을 것 같다.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그러는지 겁이 덜컹 났다. 책장을 하나 사야겠다고 한다.
“책도 안 읽는 사람이 책장은 왜?”
“책 안 읽으면 책장도 못 사요”
책장은 좀 거추장스러우니 나중에 집수리할 때 아예 붙박이로 짜 넣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하니 일단은 가서 구경이나 해보자고 한다. 백화점 가구는 터무니없이 비쌀 것 같아 가구공단으로 가보자고 하자 아내는 미리 봐 둔 곳이라도 있는지 직접 운전을 하여 어디론가 간다. 다행히 백화점이 아닌 수지 가는 길의 가구점 거리였는데 도착해서 보니 신문의 낱장 광고(찌라시)에서 한번 본 기억이 있는 상호였다. 그 상점은 서제와 관련된 책상과 의자, 책장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값이 몇 백만 원씩이나 하였다. 나는 그런 가구는 우리 집에 어울리지도 않고 살 돈이 어디 있느냐며 그냥 나와 버렸다.
아내와 나는 물건을 사는데 있어서 성향이 정반대였다. 나는, 사람 마음은 간사한데다 하루가 지나면 좋은 상품이 쏟아지는 좋은 세상이니 대충사서 쓰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하나를 사더라도 옳은 물건을 사야 한다며 몇 번을 고른 후에 소위 메이커를 찾다보니 늘 비싼 것들이다.
근교에 가면 가구전용공단이 있어 거기 가면 싸게 살 수 있다고 나는 사정을 했으나 아내는 막무가내로 가구도 브랜드 있는 것을 사야 오래 쓰고 설상 흠이 생겨도 수리가 용이하다고 하며 막무가내다. 나도 ‘내가 학자도 아니고 이 나이에 책을 보면 얼마나 본다고 그런 비싼 책장을 사느냐’며 필요 없다고 우겼다. 그때서야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이 방에 책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쌓아두니 청소하기도 어렵고 보기도 안 좋으니 퇴직 선물로 책장을 하나 사 주겠다’고 한다. 속으로는 정말 고맙고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서가는 책만 얹어 놓고 꺼내볼 수 있도록 튼튼하면 됐지 메이커가 왜 필요할까.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비싸다고 싶을 정도의 책장을 하나 샀다. 특수소재로 만들어 웬만큼 무거운 책도 올려 놓을 수 있고 조립식으로 되어 이사 갈 때 옮기기도 편하다고 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셋이나 되니 나의 차례가 오지 않았다. 아내의 텔레비전 시청시간을 피해 거실의 소파와 안방 침대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서울에서 분당으로 이사를 했다. 방이 네 개나 되었는데도 두 딸에게 방 하나씩을 내주고 막내와 나는 제일 적은 방을 같이 썼다. 막내는 누나들한테 물려받은 책상을 사용하고 나는 헌 식탁을 책상으로 대신 사용하였다. 다행히 막내가 몇 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 골방은 온전히 내차지가 되었다. 헌 식탁의 남는 의자를 양쪽에 놓고 그 위에 막내의 낡은 책상의 윗부분만 뜯어 걸쳐 놓아 앉은뱅이책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 들여 온 책장에 책을 가득 정리하니 서재다운 모습이 제법 갖추어 졌다. 도서관처럼은 아니더라도 나 나름대로 분류를 해서 찾기 쉽도록 배열을 하였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더 좋은 것은, 보고 싶은 책을 쉽게 꺼내보고 다시 꼽기도 편했다. 요즘도 아침저녁으로 작지만 나만의 공간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노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록 식탁을 개조한 책상을 쓰고 3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너무나 좋다. 그런데도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지 지금은 흔들의자나 뒤로 팍 젖혀지는 의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의자에서 그대로 잠도 잘 수 있고 흔들거리는 의자에서 음악이라도 들으면 더 좋은 글감이 떠오를 것 같다. 이 글을 아내가 봤으면 좋겠는데 한편으로는 또 비싼 가구점으로 나를 데리고 갈까 겁부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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