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珉隨筆房

행복한 산책

혜안1952 2022. 4. 15. 11:39

행복한 산책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예상보다 길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이제 거의 정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동안 외출을 자제하며 실내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주로 책 읽기와 산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집 주변에는 작은 공원과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이 길게 뻗어있어 산책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평소에도 하루에 만오천 보를 목표로 매일 걷고 있다. 나는 당뇨를 진단받아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더 걸으려고 노력한다. 평일에는 주로 집 근처 공원과 탄천을 산책하고 주말에는 약속이 없으면 동네 뒷산을 오른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주 등산모임이 있어 친구들과 서울 근교 산을 자주 찾았으나 코로나로 모임을 할 수 없어 각자도생하고 있다. 한때는 설악산, 지리산, 소백산 등 높은 산을 일 년이면 두세 차례씩 올랐으나 이제는 산을 오른다기보다는 천천히 사색하며 산책하듯 걷는다. 내가 자주 찾는 동네 불곡산은 왕복 두 시간 반 정도의 거리인데, 적당한 경사도 있어 운동도 되고, 내 나이에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어 좋다.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산 정상에는 2단 높이의 정자를 새로 만들어 시내를 조망할 수도 있다.

  요즘은 생태계가 많이 복원되어서 산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새를 볼 수 있다. 어제는 산을 중간쯤 오를 때 딱딱소리가 들려서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딱따구리가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다. 크기가 참새보다 조금 큰데 나무를 쪼는 소리가 산속의 고요함 때문인지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 힘든 작업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무껍질을 쪼아 구멍을 내고 그 속에 있는 애벌레를 잡아먹기 위해서란다. 작은 부리로 단단한 나무를 어떻게 쪼는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파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를 산에서 듣고 있으니 행복감마저 느낀다. 행복이란 게 별거인가. 그저 평범한 곳에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을 즐겼다는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처럼 일본 교토에 가면 철학자이자 교토대학 교수인 니시다 카타로가 산책을 즐겼다고 해서 이름을 붙인 은각사부터 난젠지까지 약 1.5km<哲學>이 있다. 나도 집 앞 중앙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숲길을 즐겨 걸으며 나만의 <사색의 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길에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신선한 숲속의 내음을 맡을 수 있고, 가을부터 겨우내 낙엽이 수북이 쌓여서 걸을 때 촉감이 좋다. 작은 언덕배기지만 걸을 때마다 마음이 고요하고 나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어 자주 찾는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하는 나와의 대화는 나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저서 걷기 예찬에서 인간은 몸으로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숲이나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온 마음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라고 했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라고 한 버트런드 러셀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행복 전도사였던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김형석 철학자 같은 분은 모두 조용한 삶을 즐겼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은 있지만, 그것을 알고 즐기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행복하게 느끼기도 하고 못 느끼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보니 요즘처럼 별일 없이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조용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느린 시간 속의 한가한 산책이 도시의 복잡하고 소란스러움을 잠시나마 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또한 산책은 가끔 우리가 잊었던 기억을 회복하게 하는 치유력이 있어 지나간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기도 한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걷기를 통해서 사유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맛이 좋다.

  도시의 복잡한 공간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당장 할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분주하다.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니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여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제는 지금처럼 복잡한 시대에 잡다한 것을 줄이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하다.

  나도 걷기를 좋아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건강상 걷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은퇴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습관이 되어 이제는 나의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얻는 행복감도 크다. 사람은 본래 자기 자리에 돌아왔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 은퇴한 친구들이 연어처럼 고향을 찾는 이가 많다.

나도 옛날 같으면 벌써 고래장 할 나이가 되었다. 별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데 세월만 흘러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초라한 몰골이 되었다. ‘빛 좋은 개살구같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럽고 자꾸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그저 평범하고 고요한 산책을 즐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김수진 한국수필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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