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배론성지 피정

혜안1952 2018. 7. 16. 22:21

 

   피정

 

  - 피정이란 가톨릭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며 지내는 일로 기독교의 기도원, 불교에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난주 배론성지로 개인피정을 다녀왔다. 40년간 샐러리매 생활을 마감하며 인생 1막을 정리해 보고 저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배론성지는 약 15년 전 히말라야ABC를 다녀온 후 피정을 가진 적이 있어 나에게는 낮익은 곳이다. 배론성지내에는 두메꽃 피정의 집과 성도미니꼬 천주의모친관상봉쇄수도원(평생을 안에서만 기도하며 지내야하는 수녀원)이 약간 외진 곳에 별도로 있다.

인생의 여정이 걷는 것과 같듯이 성지내의 로사리오 길(천주교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니 한여름의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꽃잎처럼 흩어져 노년이 된 내 어깨위로 내리 비쳤다.  한적한 산길에서 발걸음을 뗄때마다  풀 한 포기 밟기도 미안하고,각종 새소리,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어니 절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디선가 선명하게 들리는 뻐꾸기 소리, 매미소리가 더욱 정겹다. 번잡한 세상을 지나야 외로움을 느낄수 있고 평온해질수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밤이되자 캄캄한 골짜기의 봉쇄수녀원 지붕 십자가 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지난 일들과 멀어지고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 구학리에 있다. 구학산(985m)과 백운산(1,087m)의 연봉이 둘러 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어졌다. 1866년 병인박해 전에 배론은 6개 마을로, 즉 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론,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비득재 마을이 있었으며, 70여호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한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배론에 천주교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791년에(정조15)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로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숨어든 교우들의 은신처가 되었다.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당시 조선 교회의 박해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작성하여 베이징[北京] 주교에게 보내기위해 백서(황사영*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소재했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소, 신학당 터와 박해시대의 옹기굴 흔적 등이 남아 있다.

 

 * 황사영 : 황사영은 정약현의 사위로 정약종에서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 

** 십자가의 길(Via Crucis)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가톨릭교의 

   고통의 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무덤에 묻히실 때까지의 과정이 총 14처가 설치되어

   있고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가톨릭신자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 배론성지 관내 약도


 

 

 

 

 

 

 

 

도미니꼬회 봉쇄 수녀원

 

두메꽃 피정의 집

 

 

 

순례자의 집으로 가는 길

 

 

 

 

 

 

 

 

최양업 신부 동상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최양업 토마 신부 기념성당

 

 

성직자 묘역(우측에서 두 번째가 지학순 주교 묘)

 

          최양업 신부 묘소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황사영 순교자 현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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