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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왔는감?

혜안1952 2011. 1. 10. 23:59

        자네도 왔는감 ?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여인이 있다 .모임에 나올 때 마다

        빈손인 적이 없는 여자다.

         

        밥솥모양으로 누룽지를 만들어 그릇처럼 쓰는데 그 속에는

        약과가 들어 있고 때로는 자잘한 고구마가 들어 있고, 혹은

        과일을 깎아 들고 올 때도 있다. 먹을 시간이 없으면

        누룽지를 쪼개서 일일이 다 나눠주기도 한다.

         

        그녀를 알기는 수 삼년이 됐는데 어느 모임에서든 그런

        식으로 베풀며 산다. 동네에 사는 노인네에게는 주로

        사탕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두어 개 씩 나눠 준단다.

        등산길에서 스치는 노인네에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거 잡수세요.”

        하면서 사탕 몇 알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준다.

         

        한 번은 몸살로 들어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언니. 방앗간에서 떡을 쪄 왔는데 나는 멀어서 못 들고

         가겠고 언니가 차를 몰고 후딱 가져갔으면 좋겠네.“ 

         

        나는 참 난감했다. 우리 식구는 떡을 먹을 사람이 없는데다

        이 쪽 사정도 모르면서 아파 누워 있는 사람에게 거두절미

        하고 하는 말이라 참 난처하기도 했다.

        "아우님, 날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 일인데, 내가 지금 집 밖을

         나갈 형편이 못되는 데 어쩔까?  아우님, 친구들 불러서

        같이 나눠 먹으면 안될까?

         ”언니 생각이 나서 일부러 만들어 왔는데, , , “

         

        그 네는 무척 서운한 모양이다.  

        사실은 그 네 집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그런 집을 처음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엇을

        사들고 가는 것도 번거롭고, 덥썩 주는 것만 받아 오기도

        그렇고  아파서 누워 있다고 하면 그 네가 끙끙 거리며

        들고 올테고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순간의 얄팍한 나의 계산이  베풀기 좋아 하는 그 여자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다는 자괴감이 그날 종일 나를 괴롭혔다.

        남이 호의를 베풀 때 거절 당하는 기분을 미쳐 깨지 못한

        愚를 범하고 말았으니 ,

        '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타산적인 사람이 돼 버린 걸까? '

         

        하지만,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맛 나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성도

        하였다. '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얼마나 베풀며 살고  있는 것일까? '

         

         

        어느 여름날에는  그녀 집에서 밥을 해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집 앞동산에까지 들고 왔다. 주변 사람들을

        불러 여기 시원한 그늘에서 밥 먹고 놀다 가자고.

        반찬도 여러 가지 맛있게 만들어 왔다. 술 한 잔 씩 돌리고 , 신세타령도 하고...

        젊은 여자는 자기 인생 상담도 하고. 참 요긴한 시간이었다.

        여자들에게 이런 시간, 이런 자리는 살아 가면서 정말

        필요한 것 같았다.

         

        당신 왜 그렇게 베풀기 좋아 하느냐고 내가 그네에게 물었다. 그 여자 말이 걸작이다.  

         

        “언니, 나중에 나 저승 갈 때 아무도 아는 사람 없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이 먹은 사람

        들이 먼저 저승에 가 있을 것 아닌감?

        내가 지나갈 때 길 가에앉았다가 얼른 일어나서 내 손을

        덥석 잡아 주면서 

        "자네도 왔는감? 어서 와.“

        하면서 자기를 반겨 줄게 아니냐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저승 갈 때 그녀 말 처럼 아무도 반겨 주는

        없으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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