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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상주 여행사진

혜안1952 2021. 7. 27. 21:24

지난 주말 휴가차 가족과 함께 집사람의 고향 문경과 나의 고향 상주를 다녀왔다. 문경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경새재길을 1관문부터 3관문까지 걷고 왔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도 많지 않고 숲과 계곡물이 있어 시원하게 피서를 즐길수 있었다. 다녀온 기념으로 사진 몇장을 남긴다.

문경새재 (聞慶새재)는 백두대간 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조령산은 경상북도 문경시 와 충청북도 괴산군 의 경계에 있는 높이 1,017m의 산이다.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 (鳥嶺)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문경새재는 과거를 보러 한양길에 오르던 영남 선비들이 장원 급제의 희망을 안고 넘던 장원급제길이기도 했었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이 곳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왜군을 막지 않고 충주 탄금대로 후퇴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대패하고 말았던 안타깝고 아쉬움이 묻어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조선초기에는 관료들과 양반들만이 넘나들 수 있던 길이어서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꼭 한 번 걸어 보고 싶은 동경의 길이기도 하였다.
훗날엔 양반세력 뿐만 아니라 보부상을 비롯한 서민들 역시 이 길을 다닐 수 있었다고 하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지다 보니 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총 길이 10km인 문경새재는 외침에 대비하여 세 개의 관문을 두었다. 세 관문 중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시작으로 1관문과 3관문이 세워졌다. 2관문인 조곡관은 임진왜란 당시에 충주사람 수문장 신충원이 게릴라 전을 펼치기 위하여 이 곳에 처음 쌓았던 성이었다. 그 후 숙종 34년(1708년) 이 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이 재확인되어 조령산성을 쌓을 때 신충원이 쌓은 옛 성을 보수하고 추가로 일관문과 삼관문을 함께 축성하고 관방(關防)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1관문 주흘관

1996년 경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400년 후 500주년 기념이 되는 2396년 10월 26일 개봉 에정이다.

지름털 바우

조령원터-고려와 조선시대 공용으로 출장오는 관리들의 공용 숙박업소

조선시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 인수인게를 하던 돗

일명 꾸구리 바위-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 송아지도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상주 경천대 -기암절벽, 낙동강,, 소나무 숲이 한데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도남서원 - 선조 39년(1606년) 건립된 서원

저의 고향 상주군 화서면 상현리에 있는 추정 500년 반송(일명: 탁수나무, 천영기념물 제 2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