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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

혜안1952 2011. 3. 11. 13:12

여러분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계시나요?

지금 이 사회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사회입니까?

논어 자로(子路)편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군자는 화합을 하되 동()하지 아니하고, 소인배는 동()하되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야지,

서로 화합하지 않고 같음만을 추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분류할 때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두루 화합하는 재능을 갖고 있지만

무조건 맹종하지는 않는 자기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사람이라 하는데, 주변을 여러 번 둘러보아도 그런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인도, 경제인도 일순간의 비난만을 피하고 싶은 인기영합주의만을 쫓는 우스꽝스런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판치고 있기에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해지는 큰 그림의 행복 비전은,

계획을 세우기도 실천을 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모두가 겉으로는 서로 같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짓밟을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고 상사의 한 마디에 모두가 같음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제안하는 부하직원의 모습은 눈치보기에 급급해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고 뒷담화만 무성합니다.

공자는 리더십의 조건으로 편애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곳곳에서 네 편, 내 편하며 편가르기를 하고 있고

어느 집단을 가더라도 계파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상사에게 한 번 찍힌 자들은 무수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곳곳에서 시한폭탄과 화약고를 품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은 상사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것입니다.

 

상사와 같은 의견을 내는 직원은 월급 도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사와 다른 의견을 내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포용하는 것은 조직이 활성화되고

생존하는데 필수요건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잘 실천한 사람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은 자신의 외교정책에 늘 다른 의견을 제안한 재상 허조와 한글창제에 반대해 온 최만리를

조정회의에서 척결치 않고 기꺼이 어전회의에 참석시켜 포용한 것은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삶을 살아온 허조와 최만리 뿐 아니라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방송국에서 서로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 32명이 모여서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모두가 하나의 화합된 소리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을 때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각자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인정해 주고 보듬어 주며 하나의 화합된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화이부동의 정신과 리더십을 지닌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를 찾으라

 

한 성인이 그 동안 자기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을 사방으로 보내

새로운 가르침을 널리 펴도록 하고 자신도 역시 전도의 길에 올랐다.

어느 날 홀로 숲 속에 들어가 나무 아래서 쉬고 있을 때였다.

청년 몇 사람이 허둥대며 숲 속을 우왕좌왕하다가 성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이쪽으로 한 여자가 도망쳐 오지 않았습니까?”

“못 보았는데 무슨 일입니까?”

사정을 들어보니 이런 일이었다.

그들은 그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약 30명쯤 각기 아내를 데리고 숲 속으로 놀러 나왔다.

그 중에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자가 한 사람 있어 거리의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 숲에서 모두 정신없이 즐겁게 놀고 있는 사이에

그 여자가 그들의 옷과 재물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

그래서 이렇게 모두가 그 여자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성인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달아난 여자를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이 물음은 그들의 허점을 찔렀다.

 

◈ 생각해 봅시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정신없이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그 사람들을 꾸짖은 것인가,

아니면 거리의 여자를 데리고 온 남자를 꾸짖은 것인가.

아니, 옷과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인가.

그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을 찾아내는 쪽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기를 찾아야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