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겨울나기

혜안1952 2012. 1. 22. 23:19

   겨울나기


                                                              심재형(예로니모)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기획관리처장


 겨울 방학 중인 신학교에는 방학을 즐기지 못하고 신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이 있다.신학교에 입학하고 5년, 정확히는군대 생활2년을 포함하여 7년의 신학교 생활을 하고 나면, 대학원1학년의 겨울이 찾아온다. 이 겨울에 대학원1년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는데, 신학생들은 이를 가리켜 통상 ‘한달피정’이라고 부른다.

 

 이 피정은 영신수련의 일종으로, 한 달동안 철저히 말을 하지 않고 내・외적으로 침묵을 지키면서 오로지 성경 씀만을 묵상하는 기간이다. 말을 하지 않을뿐더러 글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있는 활자는 오로지 성경뿐이다. 신부와 신학생이 마주치더라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부들은 되도록 신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멀리 돌아 목적지를 가기도 한다. 밥을 먹을때에도 피정을 하는 신학생들끼리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멀리 떨어져 앉는다. 한 달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산속에서 혼자 한 달을 살면 오히려 더 편할 것이다 .함께 있으면서도 홀로 지내야 하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동안거(冬安居) 에 임하는스님들처럼 외부와 차단된 가운데 정진 수행하는 신학생들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더 맑고 순수한 진짜 ‘나’를 찾고, 그 순수함 속에 담겨진 하느님의 모상성(模像性) 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숙연하다. 홀로 지내면 나에게로 깊어지고, 나에게로 깊어질수록 신(神)에 대한 감각이 더 탁월해진다. 실제로 피정 기간 중에 학생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환경,곧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다는 것을 체험한다. 그동안 무심히 스쳐들었던  새소리의 청명함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심지어 바람부는소리, 나무 흔들리는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린다.무심코 바라보았던 사물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산책하게 되고,어디를 돌아 어디까지 걸으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그렇게 정신또렷해지고 감각의 기능들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면서 말씀 묵상을 하게 될 영혼의 기능도 반짝이는 칼날처럼 날카로워진다. 복음서에 적 힌 단어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자머무르며,절(節) 과 절사이 의 빈 공간에서 조차 숨겨진 뜻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면서 묵상하고 또 묵상한다. 말하지 않아야 말씀또렷해지는 아이러니함 때문에 그들은 오늘도 침묵한다.

 

  피정을 마쳐가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이번 겨울에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성탄절을 보냈고 가장 요한 새해를 맞이 했다. 다시는 찾아 오지 않을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란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의 시  (0) 2012.02.06
어느 서울대생이 본 안철수  (0) 2012.01.24
사람의 나이  (0) 2012.01.17
내가 좋아 하는 이  (0) 2012.01.09
수선화  (0) 201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