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

기발포와 갈대밭

혜안1952 2018. 3. 28. 22:53

 

 

기발포와 갈대밭

 

서기 656년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 주재한 회의에서 좌평 성충이 이리 말했다.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유로로는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에 못 들어오게 한 뒤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싸우시라.” 기벌포는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 사이에 있는 금강 하구다. 사위(四圍)가 탁 트여 뻘에 빠진 적군은 궁수들의 화살을 피할 수가 없는 곳이다. 주색에 빠진 의자왕은 그치라는 말에도 끝까지 바른말 해대는 성충을 옥에 가뒀다.. 결국 성충은 죽었다.

4년 뒤 6607913만 대군을 실은 당나라 소정방 함대 2000척이 기발포에 나타났다. 신라 수군 100척도 함께였다. 같은 날 신라군 5만 병력은 무주공산인 탄현을 넘어 황산벌에서 계백의 오천 결사대를 몰살시키고 부여로 진군했다. 서쪽 기벌포에 상륙한 나당 함대는 뻘 위를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상륙장치로 덮어 군사들을 금강 좌우측으로 빠른 속도로 북상했다. 그해 백제는 망했다. 바른 말 내치고 아첨과 사탕발림에 귀 기울인 결과이니 에나 제나 세상 이치는 똑같다.

백제 멸망 3년 뒤인 663년 백제 부흥을 꿈꾸는 세력과 1000여 군함에 승선한 일본 지원군 37,000여 명이 기발포에서 다시 당나라 수군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성급하고 무모한 공격으로 시체가 풀더미미처럼 쌓이도록 대패했다.

13만 대군이 수륙병진하던 길목에 한산면 신성리가 있다. 그 강변에는 갈대밭이 있다. 1362년 전 그날 북과 징을 두드리며 강 양쪽을 새카많게 물들였을 당나라와 신라군사들. 마치 영화처럼 저 갈대밭과 중무장한 군사들이 중첩되면서 금강변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영화<공동경비구역>에서 지뢰를 밟은 국군 이병헌을 인민군 송강호가 깐족대면서 살려준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이 곳은 전남 순천만, 해남 고천암호, 안산 시화호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갈대밭으로 알려져있다. 지금 신성리 갈대밭은 평화롭고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틈입할 뿐, 끔찍한 전쟁의 흔적은 간 곳이 없다. 여자의 일생과 모시의 일생이 궁금하고 갈대밭의 추억을 원하거든 지금 서천으로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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