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내여행사진

남한산성 행궁

혜안1952 2014. 6. 4. 17:07

 

                                              

                                           南漢山城 行宮

 

행궁이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쳐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6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2년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싸웠다. 이후에도 숙종.영조,철종,고종이 여주,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로 이용하엿다. 남한산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오전 10시부터 입장이 가능하여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여 아쉬웠다. 그러나 외곽에만 보아도 담장이며 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南漢山城 鐘閣 天興寺 銅鐘-고려 현종1년(1010)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태조 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높이 170cm,입지름 100cm

 

 

 인화관(人和館)은 객사(客舍)건물이다.

객사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에를 올리거나 외국사진,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오래전에 이곳에 남한산성이라는 한옥 호텔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行宮표지석

 

 

 

 

 

 

 

 

 

 

 

 

 

 

 

 左殿-남한산성에는 유사시 임금이 피난할 수 있도록 행궁시설을 건립하였고 그와 더불어 종묘와 사직을 모실 수 있도록 좌전과 우실을 마련하였다. 좌전은 남한산성 축성 당시에는 없었으나 산성내에 행궁을 건립하면서 숙종 37년(1711)에 종묘를 봉안하기 위하여 좌전을 세운 것이다. 종묘를 '좌전'이라 붙인 것은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유교풍습을 따른 것인데, 왕궁을 중심으로 죄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을 배치하는데서 유래하는 것이다.

 

 

 

 

 

 

 

 

 

 

 

 

 

 

 

 

 

 

 

 

 

 

 

 

 

 

 

 

 

 

 

 보호수-수령410년 25m

 

 

 

 

통일신라시대 기와

 

 

 내아터-내아는 수령의 가족이 거처하는 지방관아의 안채로서 규모는 26칸이었다. 정조 20년(1796)에 연무관 근처에 24칸의 내아가 신축되면서 옮겨졌다.

 

 

 

 남한산성에는 보호수가 많다.  이 느티나무도 320년된 것으로 특히 산성내에는 아름다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경치도 좋고 피톤치드가 많이 나와서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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