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달을 넘기도 매듭을 짓지 못하고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와 잘잘못을 따지는 공방으로 시끄러워 TV켜기도 싫은 지경에 이르렀다. 와중에 친구의 냉철한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에 공유해본다.
T.S. Eliot는 황무지(From the Waste Land)란 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이라고 하였다.
죽음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황무지 주민들에게 있어서 윤회의 철학이 수반된 부활의 의미는,
새롭게 태어나는 행복이나 희망에 찬 의미가 아니라 살아가기 힘든 황무지 삶의 반복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반복은 그 것이 윤회든 부활이든 그 어떠한 형태적 묘사와는 상관없이
결코 희망적이지 못한 처절하고 무의미한 순환의 반복일 뿐이기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황무지의 삶을 표현하였다.
지금 우리는 황무지가 아닌 잘 일궈 놓은 이 땅에서 또 다른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우리의 미래인 수많은 피지 못한 꽃송이들이 맹골수로의 차가운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었으니
이것은 잔인함을 넘어서 처절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국가적 재난이고 국민적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침몰의 두려움 속에서 보낸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문자 한마디로 시작된 이 처절한 유가족들의 슬픔을
어찌 우리가 만의 하나만큼이라도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 들을 따뜻하게 보살피자.
그 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자.
그들의 감정 표출까지도 모두 당연하게 받아 들이자.
실컷 울게 하고 실컷 욕하게 하고 실컷 부르짖게 하자.
지금의 그들에게 자식이란 나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될 수도있다.
그 것은 그들도 우리도 모두 나라보다 더 가깝게 있는 내 가정에서 내 싹을 키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야속한 시간마저도 무심하게 흘러 이제 5월이다.
이제는 하나씩 우리의 옷 매무새를 고쳐야 할 시간이다.
사고를 수습하는 데는 뜨거운 감정이나 폭발적 열정보다 오히려 차갑고 냉정한 이성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첫째는 기본과 법규를 지키지 않은 선박회사와 사명감없는 선원들의 무책임한 사후처리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슬기롭게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한 정부의 구조시스템에 관한 아쉬움이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성숙되지 못한 시민들의 무분별함과 이를 부추기는 메스컴의 크게 잘못된 보도행태에 관한 우리의 후진적 미개성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어느 학생이 미개적 국민이란 말을 했는데 시기적으로 미묘한 그 학생의 아버지 입장 때문에 공연히 국민의 지탄을 받는 철부지 애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그 뜻을 나 스스로 충분히 깨닫고 공감하기에 여기에 "미개"라는 단어를 인용해서 떳떳하게 쓰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관한 것은 사고가 수습되고 난 후에 정확하게 내용을 조사하여 죄가 있다면 엄히 그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사고를 수습 중인 지금, 종합적인 조사나 판단능력도 없는 우리가 나서서 이러니 저러니 현자 행세를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온갖 억측과 단편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오해만 만들어 낼 뿐 어느 누구에게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 수사기관에서 전체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몫으로 맡겨 두는 것이 순리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에 관한 것은 끝내 우리를 슬프게 하고 후진적 미개 국민으로 만드는 참사보다 더 비참한 우리의 처절한 현주소이다.
어느 나라 어디에서든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자연적이거나 인적요인에 의한 재난은 발생할 수있다. 그런 재난의 사전 예방이나 사후 수습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은 서로 협력적 재난 방지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데 그 것이 국가의 선진성을 측정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정부는 관련법규를 만들고 재난 예방을 위한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정책과 시스템을 지원함으로서 재난을 방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면 국민은 각자 올바른 사고와 정의로운 행동으로 재난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방지해야하는 실질적 주체가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편적 사고로 무분별하게 정부를 힐난하기에 앞서 우리(국민) 중 일부(해운회사 임직원 및 관련자)가 잘못을 저질러 이런 재난을 초래했다는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먼저 자책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굳이 거창한 국가론적으로 일부를 인용하자면 정부란 전지전능한 초월적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위임한 제한적 범위 내에서 힘을 행사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일 뿐이다.
재난 수습의 본질을 벗어나 특정 성향의 일부 집단의 주장에 편승하여 사고 수습과정에서의 정부의 음모론, 무능 정부 운운 등으로 논리성도 전혀 없는 유언비어로 국민을 혼돈시키고 나라전체를 어지럽히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통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홍가혜라는 듣보잡도 못했던 영웅 잠수사의 출현이나, 가짜 유족대표인 새민련의 저급 정치인 송정근의 부상, 방실 방실 웃으며 무능정부와 담판하려 청와대를 찾아가는 가짜 유가족이며 연기력 좋은 선동꾼의 데뷔, 개인의 사업 발판을 위해 유족과 국민을 철저하게 속인 철저한 알파잠수 이종인대표의 김선달 행세 등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이런 와중에도 이를 정부를 폄하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호재로 여기고 사기꾼들의 조작된 엉터리 이야기를 호기있게 여기저기 SNS에 무차별적으로 퍼 나르던 단세포 뇌구조를 가진 체제 부정형 손가락질쟁이들은
이제 어떻게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그들의 잘못됨까지도 잘 정당화할 것이다.
그들은 원래 말 잘 바꾸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니까.
현대사회에서의 메스컴의 영향력이나 위력을 단 몇 자의 글로서 설명한다는 것이 우습다.
굳이 말을 한다면 그들은 그냥 제왕일 따름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왕 짓을 하는 족속들이지만 우리들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바램이 있다.
국가적 재난으로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은 단순한 분노와 좌절을 넘어서 집단 패닉상태로 빠졌다.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의 전체적인 지적 소양이나 위기 대응력이 부족해서인지 아직도 스스로 추스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패닉의 위기에 노출 되어있다. 거기에다 별의별 거짓과 선동으로 우리를 자극하는
정의로움을 가장한 정의롭지 못한 문자를 보내는 무분별적인 SNS족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메스컴에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유가족들에게는 뜨겁게 마음으로 그들을 안아 주고,
국민들에게는 정확하고 검증된 사실을 알려 주고, 사고수습에 관련해서는 차가운 이성적 눈으로 대응하는
분별력 있는 메스컴의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다.
뜨거워야 할 곳과 정확해야 할 곳, 그리고 차가워야 할 곳이 뒤범벅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언론들의 행태는 폭력적인 단어와 격하고 자극적이며 한탕주의적인 추악한
상업성으로 오염된 거짓 폭로성기사가 온 곳을 뒤 덥고 있다. 보도를 핑게로 종군기자 뛰어 다니듯 하는 그들에게는 유가족들이 서로 슬픔을 나누거나 위로의 대상이 아닌 단순한 취재 먹잇감 일 뿐이다.
그들의 아픔을 부추기고 그 슬픔이 폭발되는 순간을 재치있게 담아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시청률을 올리는 경쟁에만 몰두하는 장사꾼으로 보인다. 분별력 없는 언론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의 역할은 사고 트라우마로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기도 해야 한다.
정신적 평정심을 되찾도록 해주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치유해주는 힐링 메스컴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격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상업화된 방송에서 벗어나서 들 떠있는 국민들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있도록 해야 한다.
한 쪽의 극단적 슬픔이 다른 쪽으로 더 크게 증폭되어 나라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 주는 방화벽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것을 서로 먼저 보도하려고 진실적 사실 확인없이 앞다투어 보도하여 국민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혼돈에 빠트리는 엉터리 언론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너 나 할 것없이 이번의 재난을 거울삼아 스스로 더욱 성숙한 국민이 되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반복되는 계절의 스트레스조차도 황무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점점 탈색되어가는 즈음의 오월이다.
대지가 움트는 그 새로움까지도 잔인한 4월로만 여겨져 힘들어 하는 황무지 주민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도 벗어나서 차분히 재난을 수습하는 오월을 만들자.
시인 김영랑은 <오월>이라는 시에서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이라고 오월에 느끼는 봄의 생동감을 노래하였다.
움츠리고 있던 가슴을 활짝 펴고
크게 기지개를 키면서 사월의 슬픔을 이겨내고
차분하게 재난을 수습하는 오월을 맞자.
힘들고 탈진한 유가족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지는 구조요원들에게
격려와 힘을 보태자.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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