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진 전시관의 선두를 달리는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사진가인 마리오 자코멜리의 국내 첫 회고전을 내년 2월 24일까지 석달간 개최한다. 자코멜리는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을 바탕으로 흑백 대비가 두드러진 작품을 주로 남긴 사진가이자 시인이다. 대표작으로는 가톨릭신학교를 드나들며 사진작업을 하던 시절의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와 검은색 의상만 입는 이탈리아 전통마을을 소재로 한 '스카노' 연작 등이 있다.
마리오 자코멜리(1925~2000)는 우리에게는 낯선 사진가다. 정식 사진교육을 받지 않은 탓으로 견고한 영혼의 조형성을 사진에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저평가돼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세니갈리에서 태어난 자코멜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며 타이포그래피와 인쇄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의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 덕분에 인쇄소를 차리면서 카메라를 구입, 사진을 접하게 됐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인쇄소를 운영하면서도 사진기는 놓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흑(黑)'과 '백(白)'으로 요약된다. 인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거나 합성하기도 했다. 조형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평생 찍은 사진작품의 95% 이상이 흑백이다. 컬러 사진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의 '스카노(Scanno)' 연작이 흑백 대비를 보여준 대표작이다. 검은 전통의상을 입고 살아가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스카노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어머니가 일하던 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장 좋아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있는 그곳에서 생의 부조리함과 외로움, 절망을 본 자코멜리다.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라는 작품은 1983년까지 그 병원을 드나들면서 작업한 것이다. 제목은 이탈리아의 시인 체자레 파베제(1908~1950) 시에서 빌려 왔다.
어릴 적부터 시 쓰기를 좋아한 그는 시에서 영감을 받거나 시구를 가져와 작품 제목으로 썼다. 춤추는 사제들을 다룬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1916~1992) 신부의 시집에서 따왔다.
노년에는 기존의 작업들을 합성해 새로운 연작을 만들었다. 연출 기법을 통해 꿈에서 마주친 환영들을 사진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겪게 된 죽음과 이별의 상처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슬프고 음울한 분위기를 주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러나 그 뛰어난 조형성과 추상성이 뒷받침되면서 오히려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카메라의 노출과 속도를 맞춘뒤 아들에게 자신을 찍도록 한 작품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한 일화가 전해진다.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그의 흑백사진 대표작 220여점이 소개됩니다.
자코멜리의 1960년대 작품'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담을 손이 없다'라는 작품으로 함박눈이 내리는 날 사제들이 눈싸음을 하며 즐기는 모습을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