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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씨 조문 과연 옳은가?

혜안1952 2011. 12. 29. 11:51

이희호 여사 조문 아들 손자 며느리 가야 했나
      
◇ 이희호 여사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김정일 위원장 조문은 실망 그 자체다. 정부가 이희호 여사를 특별히 배려해서 조문을 허용했으면 혼자서, 필요한 수행원만 몇 명 데리고 가면 모양새가 좋을 텐데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같이 동행한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희호 여사의 방북 조문은 정부가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에 했던 일을 생각하면 정부는 조문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갖추고,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한해 조문을 허용했다. 이 정도는 다들 아는 내용이다.

또 정부가 두 사람에 대해 조문을 허용한 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봐도 된다. 정부는 군대와 당을 사실상 장악한 김정은을 적대시하기보다 북한이 안정을 찾고, 남북이 협력하면서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야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김정일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든 일단 죽음을 맞았고, 정부가 고민 끝에 제한적인 조문을 허용했다. 이 방침에 따라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은 26일과 27일 평양을 방문해 조문을 마쳤다. 이로써 정부의 입장도 살고, 북한의 입장도 살았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입장도 살았다.

문제는 이희호 여사의 조문단이다.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이희호 여사와 주치의 등 몇몇 수행원만 방북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TV에서 이희호 여사의 조문단 명단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방문단에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손자까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는 순간 ‘이게 뭐 가족 조문단이야?’ 하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의미 등을 높이기 위해 아들을 한 두 명 데리고 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이희호 여사의 건강 등을 생각해서도 이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며느리와 손자까지 동행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희호 여사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희호 여사 자신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동행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혼자 달랑 가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하는 조문을 함으로써 깊고, 깊은 애도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인에 대해 이희호 여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도를 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희호 여사의 가족 조문단을 보는 눈은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다. 이희호 여사의 조문은 개인이 갔지만 실제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 가고 싶지만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정치인이나 시민 사회단체의 사람들도 있다. 이희호 여사는 이들의 몫까지 가지고 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희호 여사는 며느리와 손자를 동행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며느리는 아들 대신 갔다고 칠 수도 있다. 손자는 어떤 명분인지 몰라도 이희호 여사가 볼 때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희호 여사가 가족 조문단을 꾸린 구체적인 내막은 잘 모른다. 필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잘 모를 것이다. 모르면 궁금증이 생긴다. 의구심도 생긴다.

연로한 나이에 평양까지 다녀온 이희호 여사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하기보다 왜 손자까지 동행했느냐고 꼬집는 칼럼을 써야 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은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글/정우택 언론인·전 헤럴드경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