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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

혜안1952 2011. 3. 29. 11:57

폴로어 67만명 국내 1위 소통대왕 작가 이외수
트위터는 살을 발라낸 문장…작가 연습에 좋아
"난 기인 아냐.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이 기인"
왕 고사한 양녕대군 17대손…반골기질 그때문인듯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는 종교지도자는 사이비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도인풍의 남자가 하모니카를 불었다. 하모니카 소리는 아직 눈발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강원도 산속에서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취재를 하러 갔던 기자도, 마침 우편물을 들고 마당에 들어서던 집배원도 우두커니 서서 하모니카 연주를 감상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낭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 하모니카를 연주한 사람은 작가 이외수(65)였다. 67만명이 넘는 트위터 폴로어를 거느린 `소통의 대왕`이자 인기 작가인 이외수를 매일경제가 창간 45주년을 맞아 인터뷰했다.

-트위터 소통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게 트위터는 습작 공간이죠. 그래서 트위터에는 머리로 쓰는 문장보다는 마음으로 쓴 문장을 구사하려고 애씁니다. 140자라는 제한이 있는 게 작가에게는 장점이에요. 뼈를 발라낸 문장을 써야 하니 일종의 트레이닝이죠. 제가 알려진 인물이다보니 공개적인 언급은 잘 안하고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쪽지를 이용해 답을 드리죠.

-트위터로 찐빵하고 감자떡을 파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제가 사는 화천이 구제역 최대 피해지역이었어요. 그래서 화천의 자랑인 산천어 축제가 취소되어 버렸죠. 그 바람에 축제 때 팔려고 준비한 많은 양의 감자떡과 찐빵이 그냥 쌓여 있어요. 이곳 경기는 아주 바닥이에요. 도시 사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구제역은 한 지역을 완전히 망가뜨렸어요. 그래서 제가 나섰죠. 트위터로 찐빵을 7000개 정도 팔았어요.

-사회적인 발언도 많이 하시는 편이죠.

▶예전에도 사회적인 발언은 많이 했죠. 그런데 그때는 내가 유명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은 거고, 원래 내가 반골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양녕대군 17대 손이라 그런가. 그분이 왕 안하겠다고 궁궐 박차고 나간 분이잖아요.(웃음) 아무튼 한국 사회가 인간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는 발언을 하게 되죠. 너무 물질의 풍요만 중시해서 생기는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한계 아닐까요.

▶인간의 삶은 물질과 정신, 영적 에너지가 고루 발달해야 행복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에만 천착하고 있어요. 물질은 풍요롭지만 정신은 빈곤한 시대는 심각한 병폐죠. 단적으로 지상파 방송마다 먹는 것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많아요. 잘 먹는 게 행복의 대표 개념이 된 것 같아 씁쓸해요.

-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화가 지망생이었죠. 그런데 춘천교대 시절 시 쓰는 최돈선 하고 같이 자취하면서 문학을 접하게 됐어요. 학교도 학점이 안 나와서 졸업도 못했고, 글만 쓰고 있는데 방세를 많이 밀렸어요. 그래서 방세를 마련하려고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그게 당선됐고, 얼마 후 중앙 무대에서 중편 `훈장`으로 데뷔했죠.

-문단과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처음 등단했을 때 많은 선배 문인과 평론가들이 떠들썩하게 극찬했었죠. 그런데 원고 청탁이 안 오는 거예요. 중앙집권적인 문단에서 나는 `듣보잡`이었던 거죠. 처음엔 좌절했어요. `작가-출판사-독자`, 이 삼각 구도만으로 살아남겠다고 결심했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글만 써서는 생활이 어려웠을 텐데요.

▶마흔 셋까지 집사람이 처갓집에서 김치하고 쌀을 가져와서 먹고 살았어요. 식구들이 굶은 적도 있고, 너무 어려웠어요. 작가는 춥고 배고파야 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식구가 무슨 죄가 있어요. 속이 많이 상했죠. 그래도 `꿈꾸는 식물`을 내면서부터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인생의 반은 굶었으니까 이제는 잘 먹으려고 해요.

-문학세계가 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람들은 자꾸 `들개`에서처럼 나에게 헝그리 복서를 요구하죠. 하지만 이제는 비운으로 일관된 소설보다는 작중 인물을 통해 행복을 보여줄 때도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헝그리 복서를 요구하더라도 작가는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줘야 하잖아요.

-요즘 한국 사회에도 종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저는 어떤 종교든 다 인정하는 편이에요.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자비예요. 그걸 팽개쳐버리면 종교가 아닌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거죠. 종교가 `다 버리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다 가지라고` 가르치면 되겠어요. 그렇게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은 사이비죠.

-스스로를 기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제가 보기엔 세상 사람들이 기인이에요. 어떻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며 사는지. 저도 지방 신문사 기자로 직장생활 잠깐 해봤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가족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아버님이 직업군인으로 사시다가 나중에 교편을 잡으셨죠.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녔어요. 아내를 만난 건 제가 춘천에서 음악다방 DJ를 했는데 그때 손님으로 왔어요. 처음에 싸웠어요. 제가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있기에 비켜달라고 했다가 싸움이 됐어요. 그런데 참 미인(작가의 부인은 미스 강원 출신이다)이에요. 그래서 사귀게 됐죠.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말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아이들이 공부하라는 말 좀 듣고 싶어 했을 정도니까요. 큰아들(이한얼)은 중국에서 7년 동안 영화 공부해서 지금 조감독으로 있고, 사진작가인 작은아들(이진얼)은 제가 있는 감성마을을 관리하고 있어요.

■ 이외수는…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 강원도 인제군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직업군인이었다.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교육대학에 진학했으나 중퇴했고, 1973년 중편소설 `훈장`이 `세대`지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춘천에서 30년을 거주하다가 지금은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트위터 폴로어를 67만명이나 거느리고 있어 김연아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 `벽오금학도` 등이 있으며 산문집 `감성사전` `하악 하악` `아불류 시불류`등 이 있다. 미스 강원 출신인 부인 전영자 씨와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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